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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2026년 3월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3월의 전설(124회) 황해도 연백군 만세시위(6) – 오기영의 연백군 배천 만세시위 회상 ④ – 1948년 『사슬이 풀린 뒤』 회고록 주요 내용 1919년 12월 창동학교 학생들 만세시위 전개 아버지 오세형, 형 오기만·동생 오기옥도 독립운동 글  이정은(월간 『순국』 편집위원, 대한민국역사문화원 원장) 만 10살이었던 오기영은 3·1운동으로 아버지 오세 형이 해주 감옥에 갇히고, 동리 사람들이 줄줄이 배 천헌병분견소에서 태형의 고통을 받는 것을 지켜보 았다. 학교에는 송선생님과 이선생님이 감옥에 갔다. 12월에 울린 창동학교 만세시위 오기영이 다니던 배천 창동학교에 새로운 선생님 이 왔다. ‘여북하여 만세도 못 부르고 잡혀가지도 못했으 랴’ 하는 무시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교장 임목 사(林牧師)가 고을에서 만세를 부를 때 권유를 뿌리 치고, 서울서 보내온 독립선언서를 겁이 나서 불태워 버렸다는 것을 알고는, ‘저게 명색이 목사야? 교장이 구?’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한 반 동무끼리 “우 리, 인사도 하지 말자”고 약속했다. 전호에 이어 오기영(吳基永, 1909~?)이 해방 직후인 1948년에 펴낸 회고록 『사슬이 풀린 뒤』(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0 2) 에 기록한 배천 만세시위 증언을 살펴본다. 이 글은 배천 만세운동과 관련된 부분을 발췌, 재구성한 것이다.  황해도 배천의 1대 50,000 지도(19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