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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운에 품은 뜻이 나라 잃은 서러움에 어린 가슴을 갈기찟어 조국 광복 대열에 살신선도 노도와 같이 의지를 다지니 조국강토와 맥을 같이하고 민족혼 속에 잠 설치는 애족애국 단심의 큰 자취 남겼다. 의령 남공 흑구 휘 상순 애국투사께서는 충열의 고장인 선산군 무을면 무등동 72번지에서 려말 명신이며 포은 야은 선생과 더불어 경학의 대가이신 익 문안 대 사천백 휘 을진공의 19대손 휘 경희공의 4남으로 태어나 이런시절 사부의 가르침 이어 청운에 뜻을 갈아 단신 현해탄을 넘으니 16세 이역고행 풍상은 살을 애이는 아픔이었으리 고학하는 배움의 열망이 나라 잃은 서러움에 앞이 가려 민족해방과 조국광복의 선도의지를 굳혔으니 동지들과 뜻을 모아 재일본 대판(오사카) 한국인 고학생 민족주의 단체 충성회를 결성하고 항일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나라 사랑하는 마음 깊이 새겼네 나라 잃은 아픈 상처 몸부림 컸네 현해 넘은 이역 단신 배움길에서 고학소년 조국찾는 단심에 절규 거룩하다 충성모임 뿌리 내려라 신명바쳐 깊이 심은 광복의 씨앗 님은 가고 남은 자취 모아 챙기니 나라위해 바친 공이 높고도 크다 공께서는 불굴의 의지로 살신우국 투쟁에 외길을 달리시어 배움에 길 마져 막히고 급기야 1942년 12월 28일 일본제국주의 쇠사슬에 감기여 한 맺힌 고초를 넘기며 3년의 선고형을 받았으니 오직 민족혼만이 공에 아픔과 외로움을 달랬으리라. 조국광복과 더불어 석방되어 한때 철기 이범석 장군이 이끄는 민족청년단에 몸을 담았으나 소년 혁명가는 광복의 환희만을 간직하고 안거의 여생을 보내며 청주한씨와 슬하에 1남 2녀를 맥 지우고 조국통일의 염원을 남긴 채 파란만장한 세대를 마치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