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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의거탑 안유문(安由文). 우러러 볼지어다 드높은 이탑을. 이탑은 영해인의 의기가 응결된 표상의 탑이다. 조국이 왜적의 말발굽아래 짓밟혔을때 영해인은 의병을 일으켜 결사항전하였고 나라를 빼았겼을때 만세운동을 창도하여 독립을 부르짖으면서 순국하셨다.
자고로 영해는 于尸(우시), 有隣(유린), 禮州(예주) 丹陽(단양)으로 불리다가 영해로 개칭되면서 목사도호부사가 여러 屬縣(속현)을 관장하던곳으로 동해안의 雄府(웅부)요 문물의 중심지였다. 따라서 이곳은 역대로 충신 열사와 석학군자와 제세명현들로 花業(화업)을 이뤄놓은 고장이다. 경술년에 국치를 맞자 영해인은 일제에의 모든 협력을 거부하였기로 왜제는 이를 보복하여 영해로 하여금 소면으로 격하시키고야 말았다. 장하도다 1919년 3월 18일 영해의 유림과 기독교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여러 고을의 청장년 수천명과 더불어 이곳 장날을 기해 대규모의 독립만세운동을 일으켜 피의 항쟁을 하였고 밤이되자 이들은 창수, 병곡, 축산, 석보로 각기 들이가 국권회복을 밤새도록 외쳤으며 날이새자 다시 영해로 집결하여 독립만세를 천지가 진동토록 부르짖었으매 일제영덕경찰서장은 그의 졸개와 포항 평해 주둔 왜군 헌병들을 합세시켜 시위투사들을 진압코져 출동하였으나 되려 격퇴당하고 물러났다. 이때 대구 주둔 78연대의 기병이 들이닥쳐 시위자들에게 무차별 난사를 자행하여 2000여명의 순국자 중상자 피체자가 생겨 이로써 강제해산 당하고야 말았다. 이 탑은 그때를 전후한 순국자의 넋을 기리기위하여 건립된것이다. 진실토록 영해인의 이 의거야말로 후일 영남일대의 3.1운동을 선도한 진원이 되었다. 광복된지 30여년이 지나 만시지탄은 있으나 이곳 애향단체인 동심회가 위대한 이 정신을 후세 길이 남기고자 이 탑의 건립을 발기하고 3.1의거탑건립추진위원회가 8개월 동안 가진 여러 어려움을 물리치며 각계각층으로부터 협찬을 얻어 마침내 1983년 11월 19일에 제작하였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