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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➋ • 동남아의 ‘십자로’ 싱가포르에서, 한국독립운동 95 우리 민족이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나 광복을 되찾 은 것은 애국선열들의 피의 대가였다고 하였다. 그 리고 미국·중국·소련·영국 등 연합국의 대일전 승리 가 한민족이 독립을 찾게 되는 데에 기여하였다고 하였다. 일본 군국주의 세력의 비인간적인 만행과 침략전 쟁 등 온갖 불의의 책임자는 ‘천황’이었고, 그에게 침 략과 약탈의 제일차적인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독립운동가들은 식민지 지배와 수탈의 최정점에 앉 아 있는 ‘천황’을 인류 양심의 이름으로 척살함으로 써 일본제국주의의 근간을 무너뜨리려고 하였다. 그 러나 전후 일본제국주의의 상징이었던 ‘천황’은 전 범재판을 받지도 않았다. 도쿄전범재판(극동국제군 사재판)에서 A급 전범 7명만이 사형을 선고받았다. 일제는 한국 청년들을 전쟁터로 끌고가 총알받이 가 되게 하여, 한국인 청년들이 무수한 희생을 당하 였다. 특히, 연합국 포로수용소 감시원으로 있던 한 국인 군속들이 연합국의 전범(戰犯)으로 체포되었다. 이들은 제2차대전이 끝나면서 연합국의 군사재판에 의해 전범 처벌을 받았다. BC급 재판에서 전범이 된 한국인은 148명이다. 이 가운데 포로수용소의 감시 원이 129명, 지원병이 2명, 중장이 1명, 중국에서 통 역으로 종사한 군속 16명이다. 그중 사형을 당한 사 람은 23명, 유기형(有期刑)에 처해진 사람은 125명 이다. 전후 BC급 전범을 처리하기 위한 군사재판소는 마닐라(미국), 싱가포르(영국), 홍콩(오스트레일리 아), 바타비아와 메단(네덜란드) 등 49개소에서 진 행되었다. 영국령 전범재판은 1945년 9월 6일 최초 전범용의자가 싱가포르 오트람형무소에 수용된 이 래, 태국 방콕형무소 등에 수용되어 있던 7,200여 명의 용의자들이 싱가포르 창이수용소(樟宜收容所, Changi Prison)로 이감되어 10여 곳의 법정에서 재 판이 진행되었다. 이 재판에서 한국인 포로감시원들 은 포로취급 불량, 강제작업, 폭행, 학대라는 죄명으 로 61명이 유죄판결(사형 10명, 종신형 10명, 유기 형 41명)을 받았다. 싱가포르에서 BC급 전범으로 창이수용소에서 교 수형이 집행된 한국인 포로감시원은 김영주, 김귀 호, 강태협, 장수업, 천광린, 조문상, 김장록, 박영조, 김택진, 임영준 등이다. 이들 10명의 유해는 따로 매 장하지 않았고, 일본인 전범자 135명과 함께 싱가포 르 일본인 묘지의 합동 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국민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립기념관 연구위원, 문화재전문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미주한인사회의 한국독립운동』, 『미주한인사회 의 독립운동가』, 『권승렬 평전』, 『일제의 한국농업정책사연구』, 『일왕을 겨눈 독립투사 이봉창』 등이 있다. 필자 김도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