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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참으로 암흑을 깨치는 태양의 빛이요 적막을 부수는 거종의 소리였다. 군중은 자기도 므로게 조국애의 정열이 폭발되어 태극기를 받아들었고 독립전치의 만세를 한 목으로 부르게 되니 의기는 강산을 찌르고 함성은 천지를 흔들었다. 공이 ?분에 벅찬 굵은 목소리로 현재 국내에 있는 왜인들은 모조리 쫒아 버리고 관사를 있는대로 처부셔야만 우리 국가의 독립을 이룩할 것이요 우리 민족의 자유를 회복할 것이니 우리가 독립과 자유를 위해 싸우다가 죽으면 충혼이 될것이요 살면 의민이 될것이니 충의를 앞두고 두려울 것이 무엇이겠는가 여러분은 나를 따르라하고 대기를 드높이 들고 전선에 서서 대중을 지휘하여 진주시에 당도하였다. 이리하여 시가는 온통 사람 물결을 이루었으니 그것은 참으로 조국에 바치는 애타고 피 끓는 부르짖음이었다. 시민과 함세하여 일헌대를 처들어가다가 송은 체포되었다. 일병은 혈안 뜨고 "주모자는 누구냐"고 묻게되자 공은 "내가 다했다."고 대답하였다. 그들은 18세의 소년이 주모자라고는 믿을 수 없다 생각하고 갖은 고문을 해가면서 배후의 조정자를 추궁하였다. 공은 이러한 협박에 조금도 기운이 꺽이지 않고 끝내 주모자는 자기라고 주장하였다. "내 나라 독립을 위해 주모한 것이 어찌 죄가 되느냐. 너희들에게 고문을 받을 아무런 이유도 없다"고 항거하며 끝까지 국복하지 않았다. 일병은 날마다 맹장과 철편으로써 차마 말로 다할 수 없는 악형을 더하여 무수난타하게 되니 몸에 성한 살이 없이 온통 피투성이 되어 수십차나 죽었다 깨어났다. 일병도 "이 같은 지독한 사람은 처음 보았다"하면서 혀를 내둘렀다. 공은 고통을 당할 적마다 입술만 깨물고 꼼작도 않았으나 그 눈에는 매운 기운이 떠 돌고 있었다. 어느날 부친이 찾아 왔을 때에는 눈물이 없던 그의 눈에서 눈물이 마구 쏟아지며 두버 다시 오시지 말라는 부탁이었다 그 눈물도 통분에서 터진 피요 그 부탁은 화가 어른에게 미칠까 남긴 하소연이었다. 그 부친은 남몰라 많은 재산을 뿌려 구원의 손을 썼고 일병도 그 상처로 보아 얼마 살지 못할것이라 생각하고 병보석으로 내 놓으나 때는 이해 9월 그뭄이었다. 병상에서 전전치료한 3년만에 거의 평복이 되긴하였으나 각절통이 철따라 일뜨나서 고질로 되었고 일병이 출입을 감금하여 입이 있어도 말할 수 없고 발이 있어도 움직일 수 없어 비록 집에 있으나 죄수와 다름이 없는가 하면 또 호적에 붉은 표를 남겨 뒷날 자질의 입학에 지장이 많았다. 공이 한번 낭랑한 뒤로부터 더욱 세상일을 듣기 싫어하여 다만 바둑과 술로 소일하다가 가산이 거의 다 탕패했으나 조금도 추난한 빛이 없고 해마다 이 날을 당하면 북쪽을 향하여 통곡을 하면서 흐르는 눈물을 금하지 못했으니 이는 그 마음속에 오직 조국만이 박혀 있었던 것이다. 공의 성질이 항항하여 세상에 치허할 사람이 없엇으되 오직 심산 김창숙선생을 마음으로 공경하여 선생이 달성옥에 갇혔을 적 찾아가 문안하였고 그뒤 선생이 임정자금을 모집할 적 힘써 도왔으니 이같이 시종여일한 뜻은 반드시 천성이요 일시 혈기가 아니었으므로 그 자숙 원규씨가 "돌 같이 강하다"라여 호를 석재라 지어 주었다. 천운이 돌아와서 대한이 광복되자 공은 지방에 건국준비회를 만들고 위원장이 된 2년에 숱한 공을 남기고는 마산으로 옮겼고 10만에 다시 진주시로 이주하여 말기에 앞날 고초여독으로 중풍질이 발하여 누월신고하다가 병오 7월 7일에 세상을 떠나니 사동안산 임좌에 장례할제 조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