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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2026년 3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②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그렇지만 함장이 프랑스로 가려면 영국 영지(領地) 를 통과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아야만 한다고 했다. 콜 롬보의 영국영사관에서 영국 영지 통과 승인 도장을 받아 다시 승선을 하였다. 이동휘 일행이 탄 배는 수 에즈 운하를 통과하여 포트 사이드 항구에 도착하였 다. 이집트 카이로를 거쳐, 알렉산드리아 항구에서 배를 타고 이탈리아 나폴리 항구에 닫았다. 로마와 밀라노를 구경하고, 알프스를 넘어 스위스 베른에 도착하여 하루를 머물고, 제네바를 구경하고, 독일 베를린으로 갔다. 이후 독일 슈테틴(Stettin) 항구에 서 배를 타고, 에스토니아의 레발(Reval) 항에서 기 차로 레닌그라드를 거쳐 모스크바에 도착하였다. 이 동휘의 모스크바 여정은 이처럼 험난한 과정이었다. 싱가포르에서 영국과 일제의 경찰에 체포될 위기를 가까스로 벗어날 수 있었다. 전후 BC급 전범이 된 한인포로감시원 일제는 1941년 12월 7일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공 격하여 미·일전쟁을 도발하였다. 이와 함께 홍콩, 마 닐라, 아시아 각 국을 침략하였 고, 마침내 말 레이 반도의 끝 단에 있는 싱가 포르를 점령하 였 다 . 그 리 고 1945년 8월 10 일 일제는 연합 국의 포츠담선 언을 받아들이 면서 무조건 항복을 하였다. 1945년 9월 3일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인 백범 김구는 「국내외 동포에게 고함」이라는 성명서를 발 표하였다. 백범은 해방을 맞는 감회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친애하는 국내외 동포, 자매, 형제여! 파시스트 강도(强盜)의 최후의 누벽(壘壁)을 고수 (孤守)하던 일본제국주의자는 9월 2일에 항서(降書) 에 서명을 하였다. …일국(一國)의 흥망과 일민족(一 民族)의 성쇄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국 운(國運)이 단절되는데 있어 수치적(羞恥的) 인의(因 意)가 허다하였다 하면, 금일에 조국이 해방되는데  있어 각고(刻苦)하고 장절(壯絶)한 노력이 있었을 것 은 삼척(三尺)의 동자(童子)도 알 수 있는 것이다. 만 일 허다한 우리 선열의 보귀(寶貴)한 열혈(熱血)의  대가와 중·미·소·영 등 동맹군의 영용(英勇)한 전공 (戰功)이 없었으면, 어찌 조국의 해방이 있을 수 있 었으랴? 싱가포르 BC급 전범이 수용되었던 창이수용소(樟宜收容所,  Changi Prison) 터  한국인 포로감시원 10명이 전범으로 교 수형을 당해 유해가 매장된 현지의 일본 인 묘지(이상 필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