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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2025년 3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①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서 벗을 얻은 격이라, 문득 몸이 이역에 있음을 잊었 다. 바로 이른바 ‘벗이 많은 곳이 곧 고향’이라는 말일 것이다. 닮은 이를 보아도 기쁘다는데, 하물며 진짜 얼굴을 대함이랴. 그들 인편에 작은 아버님께서는 편안하신지, 고향 생각 속에 있던 여러 친지와 늙고 젊은 사람들은 어 떻게 지내는지를 물었다. 일일이 자세히 듣고는 기쁘 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여, 어느새 내 몸이 고향의 어 느 언덕 속에 있는 것 같았다. 만식, 규식, 문식, 세 조카가 또 장차 차례로 들어올 것이라 한다. 기쁘긴 하나 만식이 수종(水腫)으로 괴 로워한다니 딱하고 염려스럽다. 조카 규식은 노인을 모신데다 식구가 많은데, 일일이 걱정이 되어 마음을 편히 놓을 수가 없다. 22일 맑음. 앉아서 성로, 형팔, 두 친척을 만난 것을 기뻐하여 시를 한 수 지었다. 23일 맑음. 두 친척 성로, 형팔과 집 아이와 조카들이 함께 영 춘으로 가는데, 권동직이 그 자부를 데리고 다리를 끌며 함께 나섰다. 굳이 말려도 듣지를 않는다. 집을 알아보는 데 급해서이겠으나 병이 아직 쾌차되지 않 으니 걱정이 특히 깊다. 낮에 이동녕, 이회영, 이선구, 이언종이 일부러 마 음먹고 와 보았다. 이날 저녁 청인의 집에 불이 나서, 응로를 보내어 도와주게 하였다. 24일 바람. 손부가 까닭 없이 고통스러워하니 안타깝다. 근심 스럽고 울적할 때, 누구 하나 마주 앉아 파적(破寂)할 사람이 없다. 산에 올라 멀리 영해 사람들 사는 곳을 건너다 보았다. 25일 비. 손부의 병이 더 심해졌다. 그 증세를 적어, 영춘원의 장용택의 집으로 응로를 보냈다. 점심밥을 먹고 떠나 서간도 통화현 합니하에서 북경으로 이주한 뒤 아들, 조카들과 함 께한 이회영(우당기념관 제공)  충남 천안시에 세워진 석오 이동녕 동상(충청일보 제공). 그는 후 일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