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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2024년 6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①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백하가 망명길에 오른 지 6개월이 되어 가고 있었다. 아직은 낯선 땅에서 여름을 맞은 망명객들은 ‘호미가 뭔지도 모르던  사 람’들이 이젠 ‘김을 매고’ 있었다. 고단할 수 밖에 없는 삶이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백하는 글을 입으로만 읽던 서생이 아니었다. 참된 학문을 해온 실천하는 참선비가 아니었던가! 참된 선비는 자신 이  처한 상황이 어떠하든지 바로 그곳에서 자신의 길은 찾아가는 것이다. 일찍이 성인께서 말하지 않았던가? ‘군자는 부귀에  처 해서는 부귀에 맞게 행동하고 빈천에 처해서는 빈천에 맞게 행한다’고(『중용』 14장). 백하는 ‘환난에 처하면 환난대로 행’ 하 고 있었던 것이다.(6월 16일 일기) 그리고 이 때에 이동녕, 이회영, 이시영 등 우리의 선각 망명자들은 환난에 처해 환난대로 행하던 백하를 찾아 모였던 것이다 .  남의 땅에서 빌린 초라한 집이었다. 하지만 백하는 자신들의 모임은 ‘자리가 정중’하고, ‘크고 성대한 집회’라고 표현하고  있 었다(21일 자 일기). 비록 상황은 어렵기 그지없었지만, 자신들이 펼쳐나가야만 될 대서사시는 그 의미가 ‘정중’하고 ‘크’ 고  ‘성대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기에 백하는 그렇게 표현했다. 이제 일기를 읽어보자. 김대락의 백하일기 ⑥ 계속되는 떠돌이 생활 속, 초라한 초가에 모이면서도 ‘정중하고 성대한 집회’라며 큰 뜻 되새겨 이주 망명 6개월 째, 어려움 겪으며 농사 본격 착수 글  최진홍(월간 『순국』 편집위원) 1911년 6월 1일 맑음. 집의 아이가 항도천으로 간지 이미 보름이 가깝건 만, 돌아온다는 기별이 아직 없다. 중간에 일이 어떻 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니 괴롭다. 걱정과 염려 끝에 영춘원으로 출발하였다. 이는 대개 영춘원이 남북으 로 왕래하는 요로(要路)이므로 항도천 소식을 탐지하 기 쉬운데다, 매제 만초(이상룡)가 지금 거기에 우거 하고 있다 해서이다. 고적하던 차에 겸하여 소창(消暢 =갑갑한 마음을 풀어 후련하게 함)할 수도 있으리라. 조반을 먹은 후, 지팡이를 끌고 출발하여 이병삼의 집에 들렀다. 길에서 마차를 만나 삯을 치르고 빌어 타기를 청하였다. 아픈 다리를 쉬어가려 한다는 것을 익숙치 못한 방언에다 대략 손짓 발짓으로 표시하니, 마차 주인이 웃음으로 받아 주었다. 칠 리 쯤을 지나 와서 주인이 문득 마차에서 내리더니 나도 내리기를 청한다. 아마 갈림길이 서쪽으로 트이는데 이곳에서 갈라져서일 것이다. 인하여 나에게 영춘원 가는 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