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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➋ • 미국 석탄광 와이오밍주에서의 한국독립운동 93 락스프링스에서 석탄을 캐 는 일은 항상 생명의 위험이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석탄광 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의 임금 은, 다른 노동을 하는 사람들 보다도 높은 편이었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노동강도가 높고 또 생명을 담보하는 일을 하다 보니, 석탄광 노동자들이 임 금 인상을 요구하는 파업도 많 았다. 미국인 탄광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 한인 노동자들도 함께 파업에 동참하여 일을 멈 출 수밖에 없었다. 특히, 석탄광에서는 늘 사망 사고가 발생하였다. 1907년 1 월 18일에는 이명구라는 한인 노동자가 화물차에 치여 다리 가 부서지는 사고가 있었고, 부상을 당한 이명구와 병중에 있는 김근선을 위해 한인 동포 들이 의연금을 냈다. 또 석탄 광에서 일을 하던 ‘이생’이라는 사람도, 돌에 치여 참 혹하게 사망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금이 다른 지역보다도 높았기 때문에 한인 노동자 들이 모여들었다. 그래서 1907년 8월 락스프링스 한 인들과 석탄회사와는 다음과 같이 협의하였다. ① 락스프링스 석탄광에서는 한인은 얼마든지 오 는대로 받게 하고, 매일 8시간 노동에 1달러 89센트 받던 것을, 지금부터는 3달러 10센트에서 3달러 40 센트까지 받게 하였다. ② 석탄 싣는 일은 1톤에 21센트씩 받던 것을, 지 금부터는 26센트씩 받게 하고, 석탄 캐는 일은 1톤 에 50센트씩 받던 것을 지금부터는 63센트씩 받게 하였다. 위와 같이 락스프링스 석탄광에서 한인 노동자의 와이오밍주 슈퍼리어 석탄광(http://www.wyomingtalesandtrails.com/superior2.html) 슈퍼리어 석탄광 광부들의 모습 (http://www.wyomingtalesandtrails.com/superior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