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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시위를 전국으로 확산시킨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지도자 장석천 선생(張錫天 : 1903-1935) 장석천(張錫天 : 1903-1935)은 광주학생독립운동의 핵심 지도자로서, 1903년 지금의 완도군 신지도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완도에서 초등교육을 받은 후 서울 중앙보통고등학교를 다니던 중 조선인 차별에 항의하여 중퇴 후에 보성고등보통학교로 전학하여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 보성고보 졸업 후 도쿄 유학을 갔다가 광주로 돌아와 1926년 학생 비밀단체 '성진회'와 '독서회' 결성을 지도하였다. 또한, 선생은 1927년 10월 신간회 광주지회에 가입하고, 12월경에는 상무간사로 임명되는 등 항일운동의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 1929년 11월 광주학생독립운동이 발발하자 학생시위를 총괄 지휘했고, 일본 경찰의 삼엄한 감시 속에서 서울 등지로 학생들의 동조 시위를 일으켜, 학생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기폭제 역할을 하였다. 이로 인헤 광주.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33년 병보석으로 석방되었다.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출옥한 선생은 끝내 고문과 옥고의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치료를 받다가 1935년 10월 18일 자택인 광주 누문동 93번지에서 순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장석천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했다. "학생 대중이여 궐기하라. 청년 대중이여 죽음을 초월하여 투쟁하자. 우리의 승리는 오직 우리들의 단결과 희생적 투쟁에 있다" (1929년 12월 장석천이 서울에 뿌린 격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