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page


93page

들은 특히 정예부대만을 배치하였으며 그 수도 수만명에 달하고 있아오니 우리의 오합지졸을 가지고 어떻게 저들을 대항할수 있읍니까? 그런즉 당분간 군대를 정비하고 정세를 관망해 가면서 한편으로 나라에서의 명령을 기다려야 될 줄 압니다'하며 강력히 주장하였다. 그러나 선생은 눈물을 흘리며 맹세하기를 '현재 임금꼐서 어떠한 처지에 계시는데 감히 전쟁에서의 이해를 따질수 있겠는가? 임금이 변을 당하면 신하는 죽는 것이 당연한 것이니 오늘날 나는 한번 죽는다는 것 밖에는 생각할 수 있다'하고 드디에 영규와 군대를 연합하여 전진하였다. 이에 앞서 호남 순찰사인 권율과 8월 8일에 군대를 하견하여 함께 협공하기로 약속이 되었었는데 권공이 편지를 보내서 기일을 늦추자고 제의해 왔었으나 그 편지를 미쳐 받지 못하고 선생은 벌써 금산군 10리밖에 진주하여 호남에서 오는 응원부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왜적들은 이 사정을 정탐하여 알아내고 우리가 미쳐 진을 치지 못한 기회를 이용하여 그들의 군대를 세 갈래로 나누어 가지고 교대로 우리를 육박하여 공격을 가하여 왔다. 선생은 곧 군중에 명령을 내리기를 '오늘의 사태는 죽음 한가지 만이 있을 뿐이다. 죽든가 살든가 앞서든가 물러서든가 간에 다만 정의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된다'하였다. 모든 군대들은 묵묵히 명렬에 복종할뿐 아무도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마침내 죽을 힘을 다하여 상당한 시간을 끌며 싸웠다. 적은 세번이나 패하여 달아나서 겨우 군대를 정돈하려하는 판인데 우리측에서는 벌써 화살이 없어졌다.
93page

적은 드디어 우리의 진영을 짓밟고 들어와 부하는 선생을 붙잡으며 달아니기를 청하였다. 그러나 선생은 웃으며 '남자가 죽을지언정 구차하게 살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하고 끝까지 북채를 잡고 싸움을 격려하였다. 군대들은 앞을 다투어 죽음을 무릅쓰고 싸워 맨주먹을 가지고 치고 받고 하면서도 한사람도 제자리를 이탈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다가 마침내 선생과 함께 죽고 한사람도 생명을 도모하여 빠져 나간 자가 없었다. 적군도 상당한 수가 죽어서 세력이 꺽이어 마침내 패잔병을 수습하여 그들의 진영으로 돌아갔다. 통곡하는 소리는 천둥이 울리는듯 하였고 그 시체를 운반하는데 사흘동안에도 다 끝내지 못하여 마침내 쌓아놓고 불태워 버렸다. 적들은 마침내 무주에 주둔했던 적과 함께 모두 다른 지방으로 달아나 버렸다. 이로서 호서와 호남이 완전히 확보되었고 국가도 이로 인하여 오늘의 평화를 보게 되었다. 그러므로 선생은 비록 전쟁에서 패하고 목숨까지 바쳤으나 적을 막아낸 공적은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선생은 의병을 일으키면서 수개월 동안에 한번도 군대들에게 매질이나 형을 행사한 적이 없지만 군대들은 모두 명령을 받들어 간곳마다 엄숙히 질서를 지키어 흔들림이 없었다. 선생이 의병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 먼곳과 가까운 곳에서 다투어 모집에 호응하였으며 당국자의 저지가 있었고 처자까지 옥에 갇혔는데도 선생의 인격에 감복되어 차마 선생의 곁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선생이 패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동리마다 통곡소리가 계속하여 들려퍼졌으며 전사한 사람의 가정에서도 조금도 사적인 감정을 갖지 않고 선생을 잃은 것을 슬퍼하였으며 이에 참가하지 못하여 죽지 않은 사람도 죽지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지 않고 다만 이제는 누구를 믿고 살겠는냐고 한탄하였다. 충청도 사람은 최하급의 천한 사람들까지도 모두 초상을 당한 사람처럼 슬퍼하였다. 선생의 인격이 이렇게 사람들을 감화시킨 것이다. 이 사실이 보고되니 나라에서는 매우 애통하시면서 특별히 이조참판 겸 동지경연의금부춘추판사의 관직을 츠증하고 아들 완도는 태릉 참봉을 시키고 달마다 봉급을 주게 하였다. 아아! 여기에서 그 임금에 그 신하가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아아! 학자가 평소에는 큰 소리를 치다가도 조그마한 이해관계에 부닥치면 겁을 내고 회피하며 미리 물러서는 사람이 많은데 선생같은 분은 과거에는 상소를 올리어 국가의 처사를 비판 항의하였고 여러번 간신을 무찌르겠다는 말씀을 올리어 곧은 시하란 소문이 세상을 놀라게 하였고 시골에 물러나와 있다가 난리가 났다는 말을 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