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page

92 2025년 10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②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회와 각지에서 축하문과 예물을 보내왔고, 마지막 에 황제폐하와 2천만 동포와 공립협회를 위하여 만 세를 세 번 불렀다. 락스프링스 지방회 창립식에서, 황국일은 다음과 같이 연설을 하였다. “지금 우리가 30~40원 부비(浮 費)를 쓰며 회(會)를 조직함은 무슨  까닭이뇨. 동포들이여. ‘회’라 함은  나누인 각 사람의 마음을 모아 단체 를 이룸이니, 적은 단체로 시작하여  천백만에 이르고, 나중에 2천만 동 포가 다 합하는 날에는 뉘가 능히  우리를 수모(受侮)하겠는가.” 공립협회 락스프링스 지방회가 처음 조직되면서 회장에는 황국일, 부회장 겸 학무원에는 이응목, 서 기 겸 사법원에는 유성운, 회계에는 한규현, 응접원에는 이명구·한성범 등이 임명되었다. 락스프링스에는 약 50여 명의 한인들이 노동을 하 고 있었지만, 1907년 5월 4일 현재 공립협회 회원은 모두 34명이었다. 락스프링스 지방회를 조직하고, 지 방회를 이끌었던 황국일이 5월 11 일에 환국했다. 락스프링스의 슈퍼리오 탄광 와이오밍주의 락스프링스에는 석탄광이 발달하고, 이곳에 한인들 이 몰려들면서 공립협회 지방회가 설립되었다. 그러나 1908년 중반 이후 석탄광에서 일을 하던 한인 노동자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였 다. 그러면서 락스프링스 지방회도 1908년 8월 해산 하고 말았다. 와이오밍 락스프링스 경찰 보고 보도 기사 (『공립신보』 1906년 10월 7일자) 락스프링스 지방회 조직 기사 (『공립신보』 1907년 3월 19일자) 락스프링스 지방회 설립 보도 기사 (『공립신보』 1907년 1월 27일자) 락스프링스 지방회 보고 기사 (『공립신보』 1908년 9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