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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2025년 3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①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도 오히려 눈물을 흘릴 지경이다. 일찍이 ‘착한 이에 게 복을 준다’고 하였는데,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는 가? 참혹하고 애석하다. 10일 집 뒤의 밭에 보리 두 마지기를 심었다. 저녁에 이정우, 류인식, 배인환, 권영목이 와서 묵었 다. 모두 청구에 문상하러 가는 길이다. 그중 나이가 젊은 친우 중 근력이 있는 자는 그런대로 앞날의 기 약을 둘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李)노인은 연고 없 는 객지에서 서로 만나 기쁜 마음을 알겠거니, 비록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하였으나, 노인의 길을 어찌 기필할 수 있으랴? 잠시 웃고서 곧 작별하니, 서운하 고 서글프다. 11일 맑음. 김우식, 송진유(경북 영천), 최생(청송 진보), 배쾌 주(안동 노산), 김수한(노산), 이준악(반사), 이건우(반 사), 김우룡(지곡)이 모두 처자를 데리고 오니, 합하 여 30여 명이다. 또한 창녕의 김규화의 편지와 아우 의 편지, 류필영(안동)이 아우에게 보낸 세 통의 봉함 을 받았다. 면대한 사람도 편지로 얻은 사연도 모두 기쁘고 위 로될 만하였다. 다만 구십 나이의 숙부와 육순의 동 생은 뵙고 만날 길이 없으니 슬프고 한스럽다. 조카 홍식은 중도에 지곡 권동직의 병석에 붙들려 함께 도착하지 못하였다. 그리운 마음을 그칠 수 없다. 12일 맑음. 이상 여러 사람들은 방을 얻지 못하여 그대로 묵 고, 이원일(李源一, 안동)이 국내에서 새로 들어왔다. 어떤 사람은 이웃집에 나누어 자고, 어떤 이는 빈 터 에서 노숙을 하니, 처음의 곤액을 누군들 겪지 않을 까마는 안타깝고 가련한 형상이 마치 나만 홀로 당하 는 듯하다. 우식과 조카 정식이 추가가로 가고 영천 의 송재기가 또 와서 잤다. 13일 비가 종일 옴. 아들 형식이 집을 구하는 일로 남쪽으로 갔다가 돌 아왔다. 손자 창로가 비를 무릎쓰고 오후에 돌아왔는 데, 비로소 한 칸짜리 거처할 방을 얻어 겨우 두 집안 의 가솔을 수용할 만하였다. 14일 흐림, 손자 창로가 또 돌아오지 않으니, 아마도 들어온 사람들을 거두어 거처하게 하는 일 때문이리라. 안동 식이 와 보았다. 이종상이 와서 전하는데, 교당에 화 재가 났다고 한다. 놀랍고 한탄스럽다. 이날 밤 꿈에 아버님을 뵙고, 또 아우 서산(=김효 락)군과 잠시 화락함을 나누었다. 그 꿈에서 시 한 구 절을 읊었는데, ‘한 톨 좁쌀 속에도 공부할 것 있거늘 사해 안 천하를 부질없이 노닐나니’라고 하였다. 붙 인 뜻을 모르겠다. 15일 맑음. 형식과 창로가 저녁 무렵에야 돌아왔다. 방이 혹 남아있는 것은 시세를 타고 배나 올랐다. 3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돌아가 잘 곳이 없으니 주객이 모두 군색하다. 안타깝고 안타깝다. 손자 창로가 청인(淸 人, 중국인) 이열정의 집에 초대를 받고 그 집에 가서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