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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바 있다. 지사는 민족정신이 투철한 애국자로서 항상 울분을 토로하였다. 지사는 조국과 민족을 위한 포부와 경륜이 있는데도 청장기를 대부분 일본 제국주의 치하에서 일경의 끊임없는 감시와 강압을 받으면서 불우한 한 평생을 지냈다. 자유스럽게 경작해 오던 담배를 총독부가 경제적 수탈 방법으로 전매법을 시행하여 담배 생산을 독점하자 이에 항거하기 위하여 동민이 경작한 담배를 선친 동곤씨와 같이 한 자리에 쌓아놓고 불태워버리고 담배대를 즉석에서 꺽어버리고 그날부터 단연을 하고 일제 시책에 항거하였다. 또 전매청 직원이 담배와 밀조주를 단속하기 위하여 합동 수색반이 동리에 와서 집집마다 뒤지면서 하물며 내실까지 신발을 신은 채 뒤지자 이에 동리청년들이 격분하여 이들을 마구 두들겨 도망치게 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로 인하여 동리청년 수십명이 지사와 함께 고령경찰서에 구속되었다. 일부는 대구지방검찰청에 송치되어 기후 소위 공무집행 방해라는 죄명으로 6개월 징역형을 받은 사람도 있고 여러 사람들이 집행유예로 풀려나온 바 있다. 이 사건도 지사가 배후 조종자라고 하여 수십일동안을 고령경찰서에 불법 감금하였다. 또 담당 면직원이 보리 공출을 독려차 나와서 연장자에게 고압적인 태도와 불손한 말투로 억압하는데 격분하여 그 조카 태철이 동면직원을 두들겨 준 일이 있었다. 이에 고령경찰서는 답곡동을 포위하여 졸와 곽종의 지사와 자 태진을 비롯한 곽시 일문 노소 수십명을 항일가문이라 하여 경찰서에 강제 연행 수십일 동안 구류 처분을 하고 조카 태철을 대구지방검찰청에 송치 6개월 징역을 받게 하였다. 그리고 지사는 일제에 세금 불납 등으로 일본 정치에 반대하였고 그 당시 또 한편으로 부재지주들의 가혹한 소작료 착취로 신음하는 것을 보고 낙동강 우곡면 소작농민조합을 결성하여 그 위원장에 선출되어 약하고 불쌍한 농민들을 위하여 부재지주의 횡포에 항거하여 싸웠다. 일제는 항시 3.1운동 날이나 큰 사건이 생길 때마다 요시찰인 또는 불령선인으로 지목하여 예비검속하는 것이 일수였다. 자 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