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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의 충주 피난 과정
명성황후는 1851년 9월 25일 여성부원군 민치록과 한창부부인 한산이씨의 외동딸로 여주 능현리에서 태어났다. (명 : 자영). 16세 되던 해인 1866년 3월 고종비로 책봉되어 궁중으로 들어가게 되었으며, 1873년(고종 10) 대원군이 하야하고 고종이 친정을 선포하면서 고종의조력자로서 정치적 역량을 발휘하였다.
1882년 6월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서울에서 광주, 여주를 거쳐 충주 노은면 가신리 신흥동으로 피신하여 이음성, 본명 : 이시일)의 집에 머물게 되었다. 같은 해 8월 1일 50여일만에 환궁하였고, 피난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임오일기가 2006년 발견되었다. 신흥동 뒤편의 국망산은 명성황후가 한양을 바라보기 위해 올랐다고 하여 유래된 명칭으로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