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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사 나운규 선생을 기리며
춘사 나운규 선생은 1902년(광무 6년) 10월 27일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회령보통학교 재학 시절에 이미 극본을 직접 만들어 연극으로 연출.공연했으며, 북간도의 명동중학교 재학 중에는 독립군에 가담하여 세칭 도판부사건에서 활약하고 그 이듬해 기미년 3.1독립운동을 주동하여 2년간의 옥고를 치렀다. 1924년 선생은 천부의 예술 재능과 민족정신을 영화예술로 구현하고자 이 땅의 초창기 영화계에 투신하였다. 마침내 1926년에 한국 영화사상 불후의 명작인 「아리랑」의 각본을 만들어 감독.주연하여 발표하매 강토의 온 민중이 망국의 비분을 달래고 그 불굴의 항일민족 사상에 감동 열광하였다. 이로써 영화「아리랑」은 유구한 민족 영화의 초석이 되었고 그 주제가는 세세대대로 이어져 한민족의 심혼의 노래로 애창되었다. 선생은 또한 「오몽녀」등 주옥같은 명작을 다수 창작하여 민족 영화 전통의 남상을 이루고 끝내 1937년 8월 9일에 영화감독 10년의 가시밭길을 떠나 36세를 일기로 요절하니 세인이 「일대의 영화왕 지다」하여 애통해 마지 않았다.
아아 춘사 나운규 선생은 겨레와 더불어 울고 웃었으며, 한국 영화의 영원한 귀감이오 세계에 자랑할만한 분이로다.
1995년 4월 20일
조각 : 김영중 / 글씨 : 박종희 / 글 : 이영일 / 세움 : 문화체육부 영화진흥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