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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➋ • 동남아의 ‘십자로’ 싱가포르에서, 한국독립운동 91 을 중국혁명에도 지원하고, 한국독립운동의 자금으 로 활용했던 것이다. 홍명희 등 4명은 말레이 반도지 역을 여행할 때 중국인기독교청년회관을 이용했다. 1916년 1월 25일 정원택이 쿠알라룸푸르에 갔을 때 에도 중국인기독교청년회관에 머물렀으며, 1월 29 일 이포(말레이시아의 Ipoh, 怡堡)항으로 갈 때도 역 시 청년회관에 머물렀다. 정원택·홍명희·김진용·김덕진이 동남아 각 지역을 돌며 독립운동 자금 모집에 열중하던 1917년 9월 변 영만이 유럽으로 가던 차에 싱가포르에 도착하여 같 이 유숙하기도 했다. 홍명희 등 4명은 1917년 10월 27일 싱가포르를 떠나, 11월 3일 상하이에 도착했다. 싱가포르를 거쳐간 한인 독립운동가들 중국에서 활동하던 한인 독립운동가들이 유럽으 로 가기 위해서는 보통 상하이에서 배를 타고, 프랑 스 마르세이유(Marseilles) 항구로 간다. 파리평화회 에에 파견된 신한청년당 대표 김규식도 1919년 2 월 1일 프랑스 우편선 포르토스(Porthos)를 타고 상 하이를 출발하여 3월 13일에 프랑스 파리에 도착 하였다.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외무차장 현순도 1920년 6월 25일 상하이에서 유럽으로 유학을 떠나 는 한인 학생들과 함께 포르토스호를 탔다. 6월 27 일 홍콩에 도착하였고, 홍콩과 베트남 사이공을 거 쳐 파리에 마르세이유 항구에 도착하였다. 임시대통령 이승만의 비서인 임병직은 상하이에 서 150일 정도 머물다가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임병직은 황진남과 함께 1921년 3월 상하이에서 프 랑스 선박 아만드 베힉호(S.S.Armand Behic)를 타 고 유럽을 경유하여 미국으로 돌아왔다. 이들 두 사 프랑스 한국유학생 단체 사진 한국민대표단(파리위원부). 사진 맨 앞줄은 왼쪽 여운홍, 파리위 원부 집주인 부부, 김규식 위원장. 두 번째줄, 프랑스어 타이피스 트, 이관용 부위원장, 조소앙, 오른쪽 끝 황기환 서기장 대한민국임시정부 주불대표 서영해(오른쪽)와 이승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