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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➊ • 김대락의 백하일기 ⑮ 91 3일 이교창의 가솔들은 청구의 거처로 갔고, 이종상의 가솔들은 떠나서 산 앞 인근 지역에 머물며 밭 갈고 머무를 계획으로 각각 실마리를 찾아 나아갔 다. 그러나 우리집 조카들 중에 뒤따라 오는 자들은 전혀 거처할 곳이 없으니 근심스럽다. 형식(큰아들) 이 유하현(柳河縣)에서 이제야 비로소 돌아와 뵙는다. 4일 이관직(李觀稙)이 와 묵으면서 하룻밤 담 화를 나누었는데 동당(同堂)의 친함과 다를 바 없고, 또 흥미진진한 고향 소식을 들으니 더욱 절절히 아픔 을 느낀다. 5일 형식과 이관직이 함께 대우구에 갔는데, 대개 갑작스런 헤어짐을 차마 견디지 못하여 전송하 려 한 것이다. 저녁에 산비가 조금 내렸다. 6일 맑음. 밤에 시냇가 경계에서 불빛이 치솟아 오르는 것을 보았다. 아마도 인근에 사는 사람들이 그물을 던져 개구리를 잡는 것인 듯하다. 청나라 사람들은 지나치 게 이것을 좋아하고, 육지의 산물로는 돼지고기를 최 상으로 삼는다. 아마 천하의 입이 같지 않은 바가 있 어서 그런가 보다. 매우 우습고 우습다. 7일 맑음. 앞집에서 개고기국을 갔다 주니 감사하다. 8일 바람. 황의영이 왔다. 집 아이가 영춘(永春)으로부터 와 서 이관직이 병들었다는 소식을 전한다. 놀랍고 걱정 스럽다. 9일 비바람과 눈이 봄기운에 어긋남. 아침에 이교봉이 물고(物故=죽음)를 당했다는 소 식을 들었다. 집 아이와 손자 창로가 바로 듣고는 달 려가 문상했다. 그 집안의 실정이 길 가던 사람까지 1921년 중국 상해에 머물던 김창숙 이 안동에 있던 류인식에게 보낸 편지 (류병훈 제공) 김대락의 집에 왕래한 류인식 · 류필영 등 전주 류씨 독립운동의 산실 안동 침류정(경상북도 제공) 김대락의 집에 자주왕래한 이관직의 노년 기 모습(국가보훈부 제공). 그는 대한제국 군 장교 출신으로 안동 협동학교와 신흥강 습소 설립에 동참했으며 신흥학교 교관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