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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2026년 3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②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서영(梁瑞榮) 상점에서 머물면서 싱가포르로 가려 고 했다. 그러나 여비가 떨어져 김진용 혼자 싱가포 르로 출발하고, 나머지 3명은 김진용이 보내온 여비 를 받아 1915년 1월 2일 샌다칸을 떠나, 3일 쿠타(인 도네시아의 Kuta, 求多)항, 4일 코타 키나발루(Kota Kinabalu, 阿非)항, 5일 라부안(納閩 坡, Labuan)항에 도착하였다. 1월 15일 나부안에서 배를 타고 19일 오 후 3시에 최종 목적지인 싱가포르에 당도하였다. 싱가포르에 도착하자 곧바로 홍명희 등은 중국계 가 경영하는 국민일보사(國民日報社)를 찾아가서 소 개서를 교부하고, 국민일보사 사원들과 인사를 나 누었다. 국민일보사는 싱가포르의 중국인가(China Town)에 있었는데, 그들은 신문사 3층에 큰 방 한 칸을 빌어 묵게 되었다. 싱가포르 시내의 국민일보 사는 달사돈산(達士頓山) 29호(29 Duxton Hill)였다. 홍명희 등은 싱가포르에서 중국혁명파 신문인 국 민일보 사장 뇌철애(雷鐵崖)의 호의로 신문사 3층에 숙소를 정하고 약 2개월간 머물렀다. 이들은 싱가포 르를 비롯한 동남아 각 지역의 중국계에게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고 자 하 였다. 김진용은 싱 가포르 주변의 쿠 알라룸푸르(吉隆坡, Kuala Lumpur)에 가서 그곳의 중국인 들과 교류했으며, 김 덕진은 홍콩으로 가 는 등 싱가포르를 중 심으로 각 지역을 돌 아다니면서 사정을 조사했다. 그리고 1915년 6월 13일부터 그동안 유 숙했던 국민일보사를 떠나 그곳에서 2km 정도 서쪽 에 위치한 킴퐁마로(金傍馬路, 현재 金榜路)에 있는 양옥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후 홍명희 등은 이곳에 서 2년 반 동안 머물면서 활동을 전개하였다. 홍명희 등이 싱가포르에 자리 잡으면서 당시 동 남아 각 지역에서 활동하던 한인들의 거점이 되었 다. 김진용은 싱가포르를 거점으로 홍콩·말레이지역 에서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중국혁명파에 군자금 을 전달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김진용은 김영일(金 永一) 등과 상하이에 이풍양행(移豊洋行)이라는 비밀 기관을 만들어 독립운동 군자금을 모집하고 있었다. 중국혁명파들에게 군자금을 관리하면서 자신이 직 접 말래카(Malacca)에서 주석광산과 고무공장 사업 도 경영하였다. 홍명희 등은 싱가포르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 할 수 있는지를 타진했지만, 당초의 의도와 달리 군 자금 모집이 여의치 못했다. 호황을 맞고 있던 주석 광산과 고무농장에 김진용이 투자하여 그 이익금 동남아지역에서 독립운동자금 모집활동을 벌였던 홍명희 등의 숙 소인 싱가포르 ‘국민일보사’ 자리(50, Kim Pong Road, 金榜路  50號) 홍명희 등이 머물렀던 국민일보사 가 간행한 『국민일보』(이상 필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