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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침략으로 조국의 운명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였을때 구국광정의 대의를 천명하고 나라와 겨례를 위해 창의활동을 하다가 왜경에 피체되어 잔악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동강주재소안에서 북향사배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월 송계명 지사의 구국정신과 끝까지 항쟁한 그 억센 투지는 청사에 길이 빛날 것이다. 이에 지사의 거룩한 공적을 비에 새겨 길이 빛내고자한다. 가월 송공은 어려서부터 강개한 기질이 있는데다 거구장사로서 말타고 활쏘기를 좋아했다. 고종 무신(1908년)에 김성택 담산 안규홍 의재 송기휴와 함께 의병을 모집하여 방략을 세워 보성의 파청과 동복의 운월치 등의 싸움에서 많은 괴수를 참살함으로써 그 명성이 드높았다. 지사의 자는 계안이요 호는 가월이다. 관향은 여산으로 시조인 고려진사 유익의 26세손이다. 철종 갑인(1854년) 9월 23일 전라남도 고흥군 동강면 마윤리 축내 부락에서 태어나 을유(1907년) 8월 16일 55세를 일기로 서거하였다. 배위는 창령장씨 재기의 따님으로 임술에 나서 계미 9월 25일에 돌아갔는데 공과 함께 축내리 선영하 유좌에 안장되었다가 병술(1994년) 대전국립묘지 선열묘역으로 이장하였다. 지사의 부는 춘영이요 조부발이며 증조부는 규보이요 고조부는 창좌이다. 5대조 래상은 가선대부이며 특히 7대조 명규는 공조참판인데 어버이 섬김에 효성이 지극하여 효열록에 증재되었으며 9대조 계현은 군자참봉인데 형제와 함께 임진왜란때 이충무공과 더불어 선전하였다. 그리고 12대조 예정은 임실현감이요 13대조 사안은 숙모전 경원도 도호부사를 지냈으며 21대조 염은 낭산부원군 문숙공이다. 지사는 슬하에 2남 2녀를 두었는데 장남은 성섭이요 차남은 갑주로 계영 앞으로 입양 아들 기남을 두고 뒤를 계승하고있다. 큰 딸은 창원 박종호에게 출가하여 아들 홍래를 두었으며 둘째딸은 장흥 임용채에게 출가하여 봉렬택모 형제를 두고 따로서는 생전에 부공의 순절을 기리는 비 건립에 평생 소망이었으나 애석하게도 1991년 타계하니 아들 형제가 모친의 유지를 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