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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쳤다. 그 살신성인이 대를 이었다. 이가 충효동의 사적이다. 이 숭고한 고장에 사적비를 세워서 나라와 겨레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게 하는 겨레의 산 교육장으로 삼고져 한다. 상단에는 당시 종군한 의사들의 고귀한 이름을 다 밝혀낼 수가 없어서 확인된 의사만을 기록했으나 전하지 못한 수 많은 의사들의 넋도 함께 모시노니 님들의 높고 매운 얼 모두 여기 강림하시어 저 아름다운 산과 들을 굽어 보시며 길이 겨레의 숭배를 받아 주시옵소서. 이 고장 충효재는 의진 항쟁시에 소실당한 검계서당 자리다. 일제때에 생존이사들이 모은 참동계 돈으로서 서당을 다시 짓는다는 구실로 세워져서 국내외 항일 지하운동의 연락이 끊임없이 오고간 정대장 부자의 추모재이다. 그러므로 一九八七년도 국가에서 보수비를 영달하여 영천군수로 하여금 묘소와 함께 다시 다듬고 이어서 충효동 명명 八○주년인 一九八八年 五月 二○日 경상북도지사 李相培 근수 대구지방보훈청장 李善五 근찬 선열양세사손 鄭喜永 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