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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독립유공 애죽지사 유만수공 공훈 기념비
진주유씨 휘 만수님은 1923.(계해년) 10.24. 부친 휘 원목(자 만호) 모친 함양박씨의 3남으로 출생하셨고, 부인 경주 김계갑과의 사이에서 해민, 세종, 해윤, 진숙, 경숙과 손자 지형, 시형을 출산하였는바
공은 율곡 선생의 옥당론에서 한국 선비 정신의 극치로 칭송되는 3대 사한림(괴정공 유문통, 수재공 유인귀, 문정공 유인숙, 몽암공 유희령)의 후손으로서 진주양씨 문정공 유인숙 선생 호 정수 중종, 인종조, 도승지 대사헌, 대사간, 형조, 호조, 공조, 이조판서, 숭정대부, 우찬성(기묘, 을사명현, 청백리, 만둔서월, 최석정, 송병선 찬 신도비)의 13대손입니다.
진주유씨 휘 만수님은
1943년 5월 일본 천기(가와사키)에 있는 일본철강주식회사에 취업중인 한국인 노무자들이 궐기하여 민족차별에 반대하는 농성시위에서 주도적 역활을 하였고, 그 후 그 사회에 장제 수용되어 생활하다가 그 사회를 탈출하여 일본내의 노무자 단체를 전전하면서 일본으로 강제수용되어 온 한국동포의 구출활동을 한 후 귀국하였고, 1945년 5월 동지 강윤국, 조문기와 함께 일본총독부 고관과 친일파를 처단하고 대한민국의 독립과 광복을 위하여 애국충렬동지들을 규합하여 한국애국청년단을 비밀리에 조직하고 의장으로 피선되어 기회가 오기를 기다려서 1945년 7월 20일 친일의 거두인 일본 중의원 박춘금이 소위 대의당이란 정당을 조직하고 내선일체와 조선인의 황민화를 부르짖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