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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의 삶과 죽음 동지는 ’45년 평양에서 출생하여 한국전쟁 때 어머님과 단신 월남하여 고등학 교를 중퇴하고 노동자가 되었다. ’70년대부터 인천지역에서 노동생활을 시작하 여 ’81년 한양합판 보일러실에서 근무를 시작하여 해고될때까지 10년동안 12시 간 주야 맞교대의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도 10년 동안 무결근으로 모범 사원표 창을 받을 정도로 성실히 근무하였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이후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느끼고, ’88년 한양합판 노동조 합을 결성하는 주역으로 나서 초대 부위원장을 맡는 등 조합원의 권익향상을 위 한 노동조합 활동에 전심을 다하였다. ’91년, 동지는 전 조합원에게 휴식시간을 이용하여 회계감사로서 감사보고를 하였는데 회사는 감사보고가 불법집회라면서 정직을 시키고 해고의 빌미를 찾고 있었다. ’91년 관례적으로 인정되었던 야근근무 중 심야휴식을 문제삼아 근무자 모두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고 동지를 해고시켰다. 10년동안 보일러실 먼지와 유 해가스로 인하여 심근경색이라는 병을 가지고 있던 동지는 부당해고에 맞서 출 근투쟁과 법적인 소송 그리고 생계를 위하여 일용노동자로 지방을 돌아다녀야 했다. ’93년 4월 고등법원에서 승소했지만 회사 측은 법원의 판결과, ‘해고된 자는 1 심 결과가 끝나면 그 결과에 의해 복직시킨다’라는 단체협약도 무시한 채 복직을 거부하였으며, 임금도 주지 않고 오히려 사표를 강요하였다. 지병인 심근경색은 수술하면 완치될 수 있었지만 수술비용이 없어 미루다가 ‘비록 회사에서 일하다 몸이 상했지만 밀린 임금을 받아 수술하여 건강을 되찾겠 다’는 소박한 소망을 이루지 못한 채 같은 해 5월 19일 심장마비로 운명하였다. 동지를 기억하는 인천지역 해고동지 협의회에서 ’98년 추모문집「해고 없는 세 상 우리가 만들겠습니다」를 발간하였다. 조경천(당시48세) 인천 시립 공동묘지에 안장 1945년 7월 29일 평양 출생 1963년 고등학교 중퇴 후 공장생활 시작 1981년 한양합판 입사 1988년 5월 한양합판 노동조합 설립에 중추적 역할 담당 1990년 노동조합 위원장선거에 출마 1991년 7월 1일 노동조합 회계감사로 일하던 중 해고 1992년 7월 인천지방법원에서 해고무효 판정으로 승소 1993년 4월 고법에서도 승소했으나 회사측 복직 거부 1993년 5월 19일 심장마비로 운명 끝내살리라 |17| |16|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김영삼정권 노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