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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산지역 항일운동사
여수시 돌산지역은 예로부터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용감하게 일어나 나라와 민족을 위해 싸웠던 의로운 고장이다. 삼국시대부터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본산산성 등 여러 곳에 산성과 봉수를 축조하여 방어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왜적의 침략을 막기 위해 종3품 방답진(防踏鎭)이 설치되었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전라남도 수군절도사(약칭:전라좌수사) 이순신(李舜臣) 장군과 동명이인이신 이순신(李純信) 첨사가계셨다. 이충무공의 뜻에 따라 방답구선(防踏龜船)이란 거북선도 만들었다. 이순신 첨사가 지휘한 방답진 장졸들은 1592년 임진년 음력으로 5월 3일 밤 썰물을 타고 경상도로 출전하여 5월 7일 옥포해전, 합포해전, 5월 8일 적진포해전에서 크게 이기고 돌아왔다. 2차 출전 때 처음으로 거북선을 앞세워 5월 29일 사천해전, 6월 2일 당포해전, 6월 8일 한산대첩, 7월 10일 안골포해전에서 대승하고 개선하였다. 1593 계사년 2월 10, 12, 18, 22. 3월 6일 장문포해전에서 승리하고 개선하였다. 일본의 작전은 육군이 전광석화같이 점령해가면 수군은 서해바다로 진출하여 한강과 대동강에서 육군에 보급품을 주어 조선과 명나라를 없애려는 계획이었지만 이순신 장군의 수군이 왜적의 기세와 야욕을 초반부터 여지없이 꺾어버렸다. 본영 여수에서 전쟁터였던 경상도까지 노를 젓고 가고오기에 군사들이 너무 힘들어 태풍이 불어도 안전한 팔풍대석 한산도에 6월 21일 행영(行營)을 설치하여 수송선만 여수와 한산도를 오고가니 너무 좋았다더라(일본강점기에 한려수도(閑麗水道)는 승리의 바닷길로 은연중에 민족혼을 살리려고 조선8경 중에 포함시킴) 8월 30일 이순신 장군은 전라좌수사 겸 초대 충청 전라 경상 삼도수군통제사로 제수(除授)받았다. 8월 29일~9월 1일 웅천해전, 1594 갑오년 9월 29일 부산포해전, 10월 1일 영등포해전도 승리하였다. 1597 정유년 1월 27일 일본의 계략에 속아 이순신 장군을 삭탈관직 투옥시키고 원균을 전라좌수사 겸 삼도수군통제사로 하였다. 이순신 장군이 죽게 된 것을 확인한 일본은 정유재란을 일으켰다. 7월 15~16일 칠천량해전에서 조선수군은 참패, 전멸하고 원균 통제사도 전사하였다. 백의종군길에서 7월 22일 이순신 장군은 전라좌수사 겸 삼도수군통제사로 복직하여 9월 16일 불과 13척으로 명랑대첩, 1598 무술년 9월 20~10월 8일 순천왜교성전투(7년 전쟁 중에 조·명·일 3국의 육군과 수군 5만 1천여 명이 함께 싸운 유일한 전투) 중 11월 18일 밤, 왜교성에 있는 소서행장을 朝(조)·明(명) 연합함대 1만 5천명과 함선들이 장도 송도 묘도바다에 변함없이 포위하고 있는 것처럼 속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