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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법린의 민족의식 형성과 실천 63 을 불쌍히 여겨 죄를 물어 선에 되돌리고, 한국을 사랑하여 그 약함을 구하여, 저들과 우리의 미래를 화평안락케 함이 불자의 도리이자 구경 적 진리29)라고 하였다. 한용운의 밀지를 받은 김법린은 범어사 의거 담당 지방파견원으로서, 3월 4일 김상헌과 범어사 청련암에 도착했다. 이로서 범어사 학생의거 를 일으킨 뒤 다시 상경했다. 4월 하순, 중국 상하이에서 군자금을 모아 불교도 세력을 확장코자 한 신상완을 따라 백성욱, 김대용과 같이 안동 현을 거쳐 상하이로 건너갔다. 그는 임시정부 청사에서 안창호와 이동 휘를 만났고, 불교계 독립운동을 도모하고자 임정 파견원으로서 안동현 을 중심으로 활약하였다. 김법린의 임무는 안동현 육도구에 표면상 쌀 가게(동광상점)를 열고 비밀리에 革新公報 를 발행하여 상하이 소식을 신의주까지 전달하는 것이었다. 1919년 5월 임시정부에서는 정부 수립 직후 열린 제4회 임시의정원 회의와 7월의 제5회 임시의정원 회의에서 한일관계사 사료편찬의 필요 성이 제기되었다. 한일관계사료집 은 일제가 악의적으로 조작․날조한 영문판 선전물이 세계 열국에 배포되어, 일제의 침략과 잔학상, 한민족 의 독립운동이 은폐되는 것에 대응하는 한편, 국제연맹에 한국의 실상 을 제대로 알리는 데 목적을 두고 편찬된 것이다. 30) 한일관계사료집 29) [原文] “…此 西山大師의 眞俗無二라 主義에셔 産出된 愛國熱을 承襲에 由이 라. …{中略}…故로 僧侶 等은 有形無形 兩方面으로 祖國의 精神을 感受 遺傳야 今 日에 及토록 古祖師의 愛國誠을 不變고 祖國을 爲야 每日 四回以上의 祈禱를 行 을 見지라도 僧侶 等의 愛國 精神이 如何을 可證겟도다. 大韓僧侶 等이 餘 敎徒와 一致 意志下에셔 絶對로 韓國의 獨立을 主唱은 神聖 精神을 意味엿 스니…{中略}…然則 正義를 無視며 人道를 破壞 世界的 惡魔인 日本을 罪야 棄惡歸善케 은 十方之世一切 諸聖의 不變할 公通的 精神이라. 故로 日本을 憐야 彼의 罪를 問며 韓國을 愛야 此의 弱를 救고 彼此의 未來를 和平安樂케 은 佛子의 道理요 究竟的 眞理라 覺悟얏니 僧侶 等은 如斯히 超世間的 圓融無碍 慈悲等觀으로 四百萬 敎徒와 치 敎不同 派不同한 餘敎徒와 純潔 意思로 握手幷 起야 大韓國은 完全無缺의 獨立國됨를 世界에 宣言함이라.” 30) 김희곤(2005), 「(한일관계사료집)해제」,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 7(한일관계사료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