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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은 급전하여 러시아와 일본이 또 우리로 써 다투어 일본은 우리의 자주독립보장을 늑 표방하면서 그 군대를 우리땅에 올려 갖은 잔학과 주권침해를 자행하매 우리정부는 적의 장도로 화하고 군주는 권력을 잃고 국민은 기를 빼앗겨 전율하였다. 이에 그는 개연히 또 상경하여 이천만 민족대표로서 국민외교를 전개하여 일사관 및 군사령부에 전후 5차 공한을 내어 그 배신과 불법을 지적하여 반성을 촉구하였으나 그 회오의 빛이 없음을 보아 다시 외국사관에 전후 2차 공한을 내어 국제담판의 개최를 요구하다가 적의 총검앞에 야러번 구욕되었으며 함께 항쟁하던 인사들도 작전방해란 구실로 거의 검속 혹 살육되었으되 그는 두리지 않고 굽히지 않고 갖은 공갈과 유인을 감연히 물리쳤다. 그러자 적은 전승의 여위를 빌려 이른바 보호조약을 병력으로 강박하자 대신 5인이 군상의 불허와 국민의 총반대에 불구하고 조인선포하려 하매 그는 곧 13도 유생을 이끌고 적신의 주토와 조약의 무효로 써 항소하였다. 이는 당시 이러한 소장문쟁의 최선창이었건마는 또 우비는 내렸으되 실현가망은 없었다. 그제야 시민이 놀라 깨어 물끓듯 하였고 조사들의 항소도 뒤를 이어 여론은 격화하고 피의 항쟁으로 벌려질 기세보였다. 그는 다시 재소로써 전차주장을 재강조함과 아울러 무례한 일사 박문을 그 본국으로 소환징변하겠금 청하여 드디어 또 일병에게 구욕되어 그 사이 시강직의 특지여수 있었으되 그의 완강한 항언과 적의 폭누한 격노로 엄한설어의 넉달을 겪었다. 비극은 갈수록 더 하였다. 그 뒤 또다시 친상으로 귀향중 경술국치의 보 이르렀다. 그는 곧 죽은 사람으로 자처하였다. 죽은 사람에게 인사 있을 수 없다. 집도 자녀도 친족도 생각할 수 없다. 옛 서울로 달려가 임금과 종사의 곁에서 이 목숨 바치리라. 그래서 엣 동지 찾아 울며 노래아며 술 마시며 또 울어 치솟는 심화로 그 목숨 마치었다. 그 목숨 마치었으되 그의 일편단심 길이 길이 구천에서 나라를 슬퍼하고 겨레를 근심하며 반역자를 꾸짖고 침략자와 다투리라. 오늘의 광복을 알고 기뻐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