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page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➋ • 동남아의 ‘십자로’ 싱가포르에서, 한국독립운동 89 다. 『방사겸 평생일기』에 따르면, 싱가포르에서 독립 운동을 모색하고 있던 장경은 불행하게도 그곳에서 사망함으로써 더 이상 이곳에서 독립운동은 일어나 지 못하였다고 한다. 벽초 홍명희 등의 독립운동자금 모집활동 동남아지역에 인삼판매를 목적으로 싱가포르에 고려인삼 상인들이 정착하면서, 중국에서 활동하던 한국 독립운동가들도 동남아에서 중국혁명파의 소 식을 전해들었다. 그러면서 중국 상하이의 젊은 독 립운동가들을 자극하여 거처를 싱가포르로 옮기 게 하였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대동보국회 총회장 장경 은, 싱가포르에서 인연을 맺지 못했다. 그러나 중국 과 만주 등지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벽초(碧草) 홍명 희(洪命憙), 지산(志山) 정원택(鄭元澤), 단정(檀庭) 김 진용(金晋鏞), 동성(東醒) 김덕진(金德鎭)이 동남아로 가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고자 하였다. 홍명희 등의 활동은 정원택이 남긴 『지산외유일지(志山外遊 日誌)』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홍명희 등이 싱가포르 등 남양군도(南洋群島)로 가 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중국 광복 전후에 운동자금 이 남양(南洋)의 화교 중에서 많이 연출되었으므로 우 리도 재원이 풍부한 남양에 광복운동의 자금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는지 답사”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고 한다. 싱가포르 이주계획은 홍명희가 처음 제창하고 나머지 3명이 동의하여 함께 가기로 한 것이었다. 홍명희 등 4명은 1914년 10월 6일(음력) 상하이 를 출발하여, 10일 홍콩에 도착했으며, 14일 북브 루네이의 샌다칸(Sandakan)에 도착하여 중국인 양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대동보국회 총회관 터 홍명희·정원택·김진용 등이 독립운동 자금 모집활동을 한 싱가포르 국민일보사 터의 현재 모습(29, Duxton Hill, 達士頓山 29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