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page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➊ • 김대락의 백하일기 ㉑ 89 27일 밤에 꿈속에서 소암공(小庵公=李邁久, 경 주 양동마을 출신, 여주 이씨)과 그의 부인인 인척 숙모를 뵈었다. 오래 헤어져 있던 뒤라 반갑게 맞이 함이 평소와 같았다. 들어오겠다는 말이 벌써 있었 는데, 이것이 혹시 미리 알리는 조짐인가? 이상하고 고마운 일이다. 권극하와 이귀암이 모두 그들의 거 처로 돌아갔다. 국문으로 「분통가」 한 편을 지어, 그것으로 비통 한 심사를 풀고, 부녀자들에게도 내가 전후로 겪은 곤란을 알도록 하였다. 대략 역사가의 필법을 본떴 는데, 이 또한 나의 본령(本領)에 드는 것이다. 뒤에 이 글을 읽은 사람이 이를 보고 눈물을 훔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형식이 기한이 지났는데도 돌아오지 않으니, 무엇 때문에 이리도 지체되는지 매우 걱정이 된다. 김기 동이 추가가에서 와서 형식의 편지를 전해 주었다. 28일 이진용, 이만엽(평해 살던 사람), 윤인보 가 와서 점심을 먹고 갔다. 손자가 어제 구회(區會)에 참석하였다가 오늘 돌아왔다. 29일 바람이 불고 날씨가 차가웠다. 꿈에 숙부를 뵈었는데, 서변(西邊)에 대추가 무르 익어 땅에 떨어져 있는 것을 양쪽 소매에 주워 담고 계셨으니, 이것이 무슨 징조일까? 29일 석공을 불러 맷돌을 팠다. 가아 형식이 대 화석(大花石)으로부터 돌아와서 말하기를, “가격은 높으나 능력은 모자라며, 땅은 넓은데 집이 없다”고 한다. 한스러운 일이다. 충남 청양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에서 경제학 · 정치학을 공부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율곡 연구로 석사 ·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한국정치연구 소 선임연구원을 지냈고, 현재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이사를 맡고 있다. 시대가 당면한 여러 문제를 풀어낼 지혜를 지나간 역사에서 찾아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면 암 최익현 선생의 5대손이다. 필자 최진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