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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만수 애국지사는 일찍이 일본으로 건너가 노동자로 생활하다가 1943년 5월 일본 천기에 있는 일본강관주식회사에 취업 중인 한국인 노무자들이 궐기하여 민족차별에 반대하는 농성시위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이후 동회사에 강제 수용되어 생활하다가 회사를 탈출하여 일본내의 노무자 단체를 전전하면서 일본으로 강제 징용되어 온 동포의 구출활동을 한 후 귀국하였다. 귀국후 1945년 5월 동지 강윤국,조문기 등과 함께 총독부 고관과 친일파를 처단하기 위하여 대한애국청년당을 비밀리에 조직하고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1945년 7월 20일 친일의 거두인 일본 중의원 의원 박춘금이 소위 대의당이란 정당을 조직하고 내선일체와 조선인의 황민화를 부르짖으면서 서울 부민관에서 아시아민족분격대회를 개최하였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그는 동지 3인과 다이나마이트로 폭탄 2개를 만들어 몰래 대회장에 들어가 연단과 복도에 장치하여 폭발시킴으로써 대회장을 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