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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8일 희생된 중학생들은 북한에서 신앙의 자유와 삼육교육을 받고자 월남하여 야경주독하며 고학으로 학업에 정진하고 있었다. 6.25동란으로 인해 학교를 떠나 피난길에 서울방향 중량천뚝 아래길로 가던 중 후퇴하던 군인 7,8명중 하나가 학생들을 오인하고 총격을 가해 학생 5명 모두 쓰러졌다. 그 중 김충희 학생은 한참후에 정인을 차리고 피가 흐르는 가슴을 움켜지고 위행병원에 찾아가 정사영박사의 집도로 수술을 받고 1주일후에 퇴원하여 학교로 갔다. 그 사이 학교에서는 김성래, 유형환, 이영천, 김기방 선생, 이응준선생, 박수산장로 정성권등이 소식을 듣고 목공부에서 널 4개를 제작해서 우차에 싣고 중량천으로 가서 희생된 4명의 학생들의 시신을 수습해서 학교로 와서 수위실 건너편 솔밭에 가매장했다. 후에 동문 19명이 뜻을 모아 재림공원묘지로 이장하였는데 현 3.3.지구이다. 오늘 6.25동란 61주년을 맞이하여 희생된 4명의 학생들과 6명의 의생들을 추모하여 이 추모비를 세운다. 2011년 6월 28일 김충희, 김재신, 유형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