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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2026년 3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②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인들이 있었는데, 이들도 대개가 인삼행상을 하고 있었다. 대동보국회 총회장, 장경 한국 독립운동과 관련하여 싱가포르와 처음 관련 을 맺은 사람은 미주와 중국 등지에서 활동하던 장 경(張景; 張鴻法)이다. 장경은 1903년 9월 미국 남부 캘리포니아 패사디나(Pesadena)에서 대동교육회(大 同敎育會)를 창설하고, 1907년 1월 ‘교육’을 ‘보국’으 로 바꾸어 샌프란시스코에서 국민계몽과 국권회복 을 목적으로 대동보국회(大同保國會)를 조직하였다. 대동보국회의 조직은 미주뿐만 아니라, 1907년 11 월에는 중국 상하이(上海)에도 지방연회가 설립되어 초기에는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당시 상하 이지역에서 활동하던 한인들이 소수였기 때문에 활 동의 한계가 있어 1909년 2월 장경도 미국으로 돌아 가고 말았다. 국외 독립운동기지 건설은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시작되었고, 영남 유림 이승희가 북만주 봉밀산 (蜂 蜜山)에 독립운동 근거지를 개척하였다. 봉밀산 독 립운동 기지 개척은 두가지 계통에서 추진되고 있었 다. 하나는 1908년 5월 국내를 떠나 블라디보스토크 로 망명해 있던 이승희가 이상설과 함께 봉밀산 지 역에 근거지 개척을 협의하였다. 또 다른 계통의 봉 밀산 근거지 개척은 안창호와 미주 국민회 주선으로 십리와(十里洼 ) 지역에 근거지를 개척한 것이다. 그 후 다시 중국으로 건너온 장경은 1911년 안창 호·안정근과 함께 봉밀산에 독립운동기지를 개척하 기 위해 함께 간 적이 있었으며, 연해주 니콜리스크 의 광동학교(光東學校)에 머물면서 독립운동기지 개 척에 열의를 보였으나, 이 사업도 여의치 못하다고 판단하여 싱가포르에 가게 된 것으로 보인다. 장경 은 당시 동남아지역 중국인 혁명가의 지원을 받고 있던 중국혁명파를 보고 싱가포르로 가게 되었다. 그가 언제 이곳으로 왔는지는 알 수 없으나 싱가포 르 중국계와 협조를 통해 한국 독립운동을 모색하였 싱가포르에 처음 정착했던 한국인 장경이 총회장을 맡았던 대동보 국회의 기관지 『대동공보』 창간호(1907년 10월 3일자, 독립기념관  제공) 1932년 아산의 현충사 중건 이후 그 앞에서 기념 촬영한  홍명희와 안재홍(필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