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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2025년 9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①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손자 창로가 돌아왔다. 땅과 살 집이 모두 뜻대로 되지 않는다. 땅 값이 배나 올라 잔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9일 형식과 박원근이 함께 추가가(鄒家街)의 학교(신흥학교, 신흥강습소)에 일을 의논하러 갔다. 20일 일꾼 세 사람을 사서 옥수수를 땄다. 21일 밤에 눈이 왔는데 깊이가 한 치쯤 되었다. 22일 어제 춘삼이 고국으로 간다고 고하였다. 이근수 <평안도 사람> 가 와서 잤다. 23일 배수봉이 자고 갔다. 이귀암이 와서 잤다. 24일 황병로, 이형소, 황신걸이 모두 점심을 먹 고 갔다. 권극하가 그의 장인이 만든 미투리를 가지 고 와서 잤다. 응증(應曾)도 고국에서 들어왔는데, 먼 저 녹동의 원통하고 참혹한 일을 알려주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 중에 그런 재덕을 모두 갖춘 사람을 어 찌 쉽게 얻을 수 있겠는가? 완복(完福)한 집에도 이런 일이 있단 말인가? 자식을 잃은 노인의 정경이 사람 으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한다. 고국의 풍조는 특별히 드러나게 꼽을 만한 것이 없었다. 그러나 함께 들어온 사람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고 하니, 은연중에 오그라드는 형편임 을 보지 않아도 알만하다. 다만 저들의 그물에 걸릴 까 두려워 도착하자마자 바로 돌아가서 고향 소식을 자세히 듣지 못하였으니 한스럽다. 농사는 큰 흉년 까지는 이르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을 사서 옥수수 를 땄다. 25일 밤에 비. 가족들을 데리고 옥수수를 땄다. 조카 규식의 집 에서 일하는 사람이 왔기에, 여러 조카들의 안부를 물었다. 이열정이 감자 몇 되를 보내왔다. 김대락의 매부 이상룡 등이 1911년 5월 경 경학사를 조직했던 길 림성 유하현 삼원포진 대고산 전경(2011년 촬영) 삼원포 추가가(현재는 명성촌)의 신흥학교 터(2011년 촬영, 이 상  독립기념관 제공). 현재는 기와공장으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