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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 봉강리 정씨고택 /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261호 / 지정일 : 205.12.27 / 전남 보성군 화천면 봉서동길 36-8 본 가옥은 조선시대 양반가옥으로 안채를 비롯하여 사랑채, 사당, 문간채, 곳간채 등을 갖춘 전형적인 대농가옥이다. 보성 봉강리은 녕광정씨 세거지로 임진왜란 이라는 국가적 위기를 잘 수습하여 선무원종공신 1등 등에 책봉받은 반곡 정경달 후손의 집으로 조선시대 중기에 입향하였다. 현 가옥 터자리는 15대째 거주해 오고 잇으며 집터의 형국은 풍수지리의 대가인 도선국사가 지은 결지(訣誌)에 장흥읍을 중심으로 하여 동쪽 약 40리 지점에 영구하해(靈龜下海)라는 곳으로 되어 있으며 집터가 거북이 머리에 해당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는 길지라고 기록되어 있다. 안채는 지금부터 400여년 전에 임진왜란 당시 전남 장흥에서 의병대장으로써 이순신을 도와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끄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마위룡의 사위인 정손일에 의해 초가로 건립되었다. 이후 정손일의 9대손인 정각수에 의하여 1890년에 초가를 헐고 그 위치에 기와로 새로 지어졌으며 민족주의 운동(근로인민당 중앙위원, 재정부장)과 교육사업(양정원 설립, 보성전문학교 (현)고려대학교 설립 자금 기부)을 한 정해룡이 중건하였다. 사랑채는 두곳으로 문간채인 바깥사랑과 현재의 사랑채가 그곳이다. 마을 입구에는 1880년(고종17)에 국가로부터 하사받은 정려문이 있으며 열녀는 정혁의 처인 광주이씨이며 이로써 집안은 성리학의 기본윤리인 충효열을 모두 갖추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