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page


88page

나라 잃은 어둠 속에서 조국광복을 위해 젊음을 불태운 애국지사가 이 고장에 속출한 가운데 남상순님이 있다. 님의 호는 흑구요 본관은 의령이니 고려말에 문학과 충절로 이름높은 익 문안대 사천백 휘 을진공의 20대손이다. 부 경희공과 모 용궁전씨 사이에 4남으로 태어나니 형에 상역 상용 상명 아우에 상길이 있다. 1926년 2월 19일 선산군 무을면 무등동에서 나서 무을보통학교를 마치고 15세에 어린 나이에 큰 뜻을 품고 홀로 현해탄을 건너 일본대학부설 대판중학교에서 고학을 하던 중 경상남도 의령군 출신인 전영수를 비롯한 학우 아홉사람이 모여 1941년 6월부터 이듬해 12월 사이에 서른 차례 넘는 밀회를 가짐에 민족단체인 충성회를 만들고 당기와 당표징을 정하여 나라사랑의 젊은 정열을 불살랐다. 그러나 이 독립운동이 발각되어 님과 동지들은 1942년 12월에 왜경에 붙잡히니 님의 나이 16세라 모진 조사를 받고 1944년 1월 27일 대판지방재판소에서 징역 3년의 선고를 받게 되었다. 적국 감옥에서 한 많은 청춘을 오매면서도 광복을 고대하는 마음은 굳어가기만 했다. 드디어 8.15해방을 맞아 오매 잊지 못하던 조국의 품안에 안기며 나라 찾은 기쁨 속에서 나라 발전에 헌신하기를 다짐했다. 철기 이범석 장군이 이끌던 민족청년단에 몸을 담고 국가재건의 기반조성에 온갖 정열을 쏟았다. 조국의 밝은 내일을 바라보며 전력을 바쳤다. 그러나 하늘은 님에게 넉넉한 시간을 주지않아 그 님 원하던 조국통일을 보지 못한 채 1978년 3월 3일 52세를 일기로 이승을 떴으니 애닯은 일이기도 하다. 님은 청주한씨 사이에 1남 2녀를 두었으니 아들에 승우 딸에 정우 선우가 있다. 1980년 8월14일 대통령표창장 제4987호를 받으니 이는 숭고한 애국정신과 나라위한 평생의 발자취를 기리고 빛내는 표상이라 하겠다. 본회는 우리 고장이 낳은 애국지사 흑구님의 뜻과 행적을 돌에 새겨 나라 사랑의 거울로 삼고 전한다. 명하여 노래부르노니 왕대밭에 왕대나고 명산대전 용나르니 절개 높은 조상 모신 선산 땅의 남씨가문 상순님이 충성회로 나라 광복 꾀한일들 이 고을의 자랑이요 이 겨레의 거울이라 애국애족 님의 공덕 돌에 새겨 세우나니 오랠수록 본보기요 어둘수록 빛나리라. 1988년 4월 10일 글 선주문학회, 글씨 철학박사 동강 조수호, 수립 선산 군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