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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비. 한국전이 한창이던 1951년 4월 이승만 대통령이 미 8군사령관인 밴플리트 장군에게 휴전 후엔 식량 물 에너지가 더욱 중요하게 될 것임을 강조, 식량은 사올 수도 빌려올 수도 있으나 물과 전기는 그럴수 없으니 화천을 꼭 탈활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대통령의 경륜에 장군이 탄복. 화천,철원에 침투한 KLO(Korea Liaison Office) 대원 김중호, 장기운이 중공군 전력을 탐지, 보고했으나 몇 달 전 북한의 산악전에서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호되게 당한바 있는 10군단 참모진은 산악지대인 그곳에 진격할 수 없다고 항변, 미 폭격기 편대가 그 지역의 중공군 탱크와 대포 등을 섬멸하면 얼마 후 그것들이 다시 배치되는 일이 되풀이 되자 밴플리트 장군은 KLO부대 최규봉 대장에게 중공군의 최신 병력 정탐 다시 요청. 중국어가 유창한 오죽송 KLP대원은 중공군 군관으로 위장 침투, 적지의 천도교도들의 친척인 진영찬 대원과는 별도로 무기류가 정찰기에 찍히기 위해 전나무로 깎아 만든 가짜임을 따로 촬영 귀환, 10군단은 목수 주력부대가 주둔중인 화천, 철원 지역과 이 발전소를 51년 4월 18일 손상없이 탈환, 이로써 휴전선이 파로호 북쪽으로 올라감. 한국전에서 외아들을 잃은 벤플리트 장군은 제대 후엔 한국경저협력사절단을 조직하여 그 단장으로 여러 차례 내한하며 이 나라 재건과 부흥에 기여하였음. 한국전의 영웅이며 겨레의 은인인 밴플리트장군과 KLO부대의 전공을 기리기 위해 이 비를 세운다. 2009.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