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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➋ • 동남아의 ‘십자로’ 싱가포르에서, 한국독립운동 87 수의 한인들이 거주하였다. 한인 인삼상인에 대해 1916년 2월 17일자 『조선총독부관보(朝鮮總督府官 報)』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근시(近時) 한국인(韓國人)으로서 인삼판매(人蔘販 賣) 기타 행상(行商)을 목적으로 신가파(新嘉坡) 지방 에 도항(渡航)하는 자(者)가 점증(漸增)하였으나, 기 (其) 대부분이 여권(旅券)을 소지하지 않고 동지(同地) 에 도착한 후 다시 인도(印度), 섬라(暹羅, 태국), 마닐 라, 난영인도(蘭領印度-인도네시아) 방면으로 가기 위하여 재신가파일본영사관(在新嘉坡日本領事館)에 서 여권을 내려고 하는 자가 적지 않다. 고려인삼 상인들은 인삼판매를 목적으로 싱가포 르에 다수 거주하게 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싱가 포르에서 인삼행상을 하던 사람이, 『동아일보』 1931 년 1월 23일자 「남양(南洋) 소식 불로초(不老草) 행상 인(行商人)」이라는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현재 남양일대에 필리핀, 인도, 지나, 섬라, 마래반 도, 화란령 군도에 산재한 동포의 수는 약 5백내지 6 백명으로 산(算)할 수 있는 바, 그들의 직업으로는 십 수인 내외의 교원학생, 관공리 급(及) 수개의 잡화상, 약종상을 제외한 기(其) 대부분은 고려인삼상으로 볼 수 있다. 이 편지를 쓴 인삼행상은 정확한 통계에 의한 것 은 아니었지만, 대략 500명에서 600명의 한인들이 동남아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다고 한다. 또 1920년 대 말 싱가포르에 100명 정도의 한인이 있었다고 하 며, 말레이 페낭(Penang)에도 10여 명 정도의 한인 이 있었다. 자바의 자카르타(당시 바타비야)에도 한 중국 상하이에서 싱가포르를 경유하여 독일 유학을 떠난 황진남(오른쪽). 왼쪽은 안창호 1942년 독일에서의 이의경(이미륵). 그는 싱가포르, 프랑스 마르세이유를 거쳐 독일 로 유학하였다. 독일에서 출판된 이의경의 자전소설 『압 록 강은 흐른다』(이상 필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