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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➊ • 김대락의 백하일기 ㉒ 87 24일 아침에 송덕규가 와서 밥을 먹었다. 전재 견(울진 사람)이 또 지나가다 들렀다. 저녁에 조카 규 식이 들어 왔다. 응로가 통화현에서 소금을 사서 왔 는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현(縣)의 감옥에 수감되었던 죄수들이 과연 도망하다가, 우연히 순찰 병에게 발각되어 마구 쏘는 포에 사살되었는데, 죽 은 자가 30여 명이고, 그 나머지 살아서 달아난 자들 이 또 40여 명으로 사방으로 흩어졌다고 한다. 25일 손부(孫婦)가 부엌에서 연기에 쐬여 눈을 못 뜨고 이불을 둘러쓰고 있다. 고용한 일꾼은 감기 가 들어서 밖에 나가 조리하고 있다. 외롭고 쓸쓸함 이 특히 심하며, 모두 가련하고 걱정된다. 26일 꿈에 숙부님을 뵈었다. 글씨 쓰는 일을 하고 계셨는데 구십 노인의 정력이 어찌 그렇게 정 정하단 말인가? 한 편 두려운 마음에 조금 위로가 되었으나 그립고 막막한 마음은 더욱 깊었다. 집을 샀다. 규식, 문식, 영식 세 조카가 살도록 하 기 위해서이다. 성문(成文)으로 계약을 맺었고, 가격 은 360원이다. 그 계약서를 받은 사람이 와서 먹을 것을 주었는데, 한 번 먹자 위장이 열렸다. 노인을 대접하는 뜻이 고맙다. 규식은 통화현의 거처하는 것으로 돌아갔다. 들 으니, 구미(龜尾)의 도사(都事) 족숙[척암 김도화[金 道和], 1825~1912) 1896년 안동의진 대장으로 건 국훈장 애국장 추서]의 상(喪)이 나갔다고 한다. 통 곡하고 통곡하였다. 27일 콩 타작을 하여 먼저 17말을 수확하였다. 28일 살고 있는 집 텃밭에서 옥수수 12말을 수 확하였다. 저녁에 가아와 임현(정주 살던 사람)이 추 가가에서 돌아왔다. 병대와 세림(世林)이 와서 잤다. 29일 싸락눈. 아이들이 산에서 나무를 베어왔다. 마구(馬具)를 고치려는 것이다. 30일 원촌 질부[김만식의 아내로 이중언의 딸 이다]가 한전(寒戰=오한이 심하여 몸이 떨리는 증상) 으로 크게 아프니 가련한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손자 아이도 건강하지 못한 기색이 있으니 애처롭고 불쌍 하다. 이것은 오랫동안 고생이 쌓인 나머지에다 또 한상(寒傷)을 무릅쓰고 왔으니 병이 나는 것도 참으 로 이상할 것은 없으나, 의원도 약도 없는 곳에서 어 떻게 할까? 참으로 탄식할 뿐이다. 충남 청양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에서 경제학 · 정치학을 공부하고 서울대학 교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율곡 연구로 석사 ·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한국정 치연구소 선임연구원을 지냈고, 현재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이사를 맡고 있 다. 시대가 당면한 여러 문제를 풀어낼 지혜를 지나간 역사에서 찾아내고자 노 력하고 있다. 면암 최익현 선생의 5대손이다. 필자 최진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