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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독립 국권 광복을 위하여 사로서 결의하고 구적일본을 완전구축하기로 천지신명에게 서함」이라 혈맹의 결의를 하다.
선생은 국권 광복활동 방법에 있어 충청지방을 중심으로 성달영 장두환 외 수백명 동지와 국내에서 광복투쟁을 하시었으며 밖으로는 중국 등지에 노백린 선생과 김좌진 장군이 이끄는 독립군과 제휴하여 투쟁은 국내외로 전개하시면서 왜경의 핍박과 빈고에 시달리는 가족을 잊으신 채 풍우풍설 속에서 일본 구적 및 친일 흉도들과 싸우시던 중 불행이도 서기 1918년 1월 체포되시어 영어의 몸으로 공주형무소에서 각 형무소로 전전하시었으니 당시 같이 체포된 동지 성달영 장두환 선생 등 무려 70여 선생에 이르렀다.
선생은 잔인무도한 고문과 치욕 속에서도 의지을 굽히지 않으신 채 복역을 마치시고 출옥하시었으나 왜경의 가혹한 고문으로 인한 지병으로 서기 1959년 8월 24일 향년 68세를 일기로 한 많은 생애를 마치시다.
선생의 광복활동은 본래 비밀리에 이루어졌던만큼 현전하는 기록 또는 전언은 영산의 일각에 불과할 때 혁혁한 업적을 다 살피지 못하는 애석한 마음 금할 길 없으며 돌이켜 보건데
선생의 광복운동은 바로 기미 3.1운동에 효시가 되었으며 항일투쟁은 바로 광복의 저력이 되었으나
선생의 높은 충의와 대절은 자유와 자주를 갈망하는 이 민족불굴의 의지의 표상이며 나아가 불멸의 인류정의의 구현으로서
선생의 애국충절의 뜻을 남기기 위하여 이 비를 세우노라.
서기 1981년 3월 일 천안시장 김홍식 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