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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기] 아련한추억들 신원식 노태우 정권 말기에 대학방송국의 농촌 봉사활동(농활)이라는 걸 했다. 농민들의 일손을 돕기라지만, 사실은 전두환, 노태우 정권의 실체와 노동 운동과 연계하는 일종 의 선전 운동 정도? 아무튼 이론적 무장이 잘된 보도부(임도영, 김상균, 박정상, 이강현, 신원식, 김문희?)는 청장년층을 맡아 모내기 후 저녁 때 마을회관에 모여 의식화 작업을 병행하는 나름 고된 15일간 일정이었다. 나머지 다른 인원은 부녀회나 아동과 청소년 을 맡아 공부를 도와주는 (실상은놀아주는) 역할을 분담했다. 그 덕분에 태어나서 처음 으로 순창이라는 곳이 고추장만 만드는 지역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이 자발적인 무임금 노동 행동에 대학주보사 기자들까지 와서 연대했었지만, 이들에 대한 기억은 별로없다(그렇다고이들이중간에힘들다고내뺐다는뜻은아니니오해는없길). 하루는 아동부 담당이던 희진이가 놀아주는 시간이 끝났지만 집에 가길 아쉬워하 는 초3 10살짜리 여자 아이와 농활 근거지였던 순창의 시골집 마당에서“빨리 집에 가 라는”, “아직 가지 않겠다”는 보이지 않는 기싸움이 팽팽할 찰나였던가? “행자야, 내 일 또 보면 되지. 늦었으니까 이제 얼른 가"라며 막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아이를 잘 달래던 찰나였던가? 27년 전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 아이의 이름이 행자였다 는 건 또렷하게 기억하지만, 그 흐린 기억과 또렷한 기억의 교차점이 있을 찰나에 청 장년층회의를마치고돌아오던내가던졌던말은아직도기억이분명하다. 기별 Essay | 0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