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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33인이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3.1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 이에 태극기를 들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는 평화적인 시위가 전개되었고 이는 곧 일제의 탄압으로 투쟁적인 시위로 전환되었다. 3.1운동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전개되어 전국적으로 참가자가 200만을 넘었고 집회 횟수가 1,500회를 상회하였으며 211개의 시,군이 참가하였다. 거국적으로 3.1독립운동이 전개되는 가운데 1919년 3월 28일 양주군 광적면 가래비에서도 3.1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수많은 애국적인 광적면민을 중심으로 이웃 면민까지 950여 명이 운집하였고 백남식 이용화 김성진 지사등이 생명을 걸고 만세운동을 주도하여 이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이에 놀란 일제 관헌은 평화적인 가래비 만세운동을 가혹하게 탄압하였으며 백남식 이용화 김성진 지사는 일본 헌병의 총탄에 순국하였다. 양주군민들은 이러한 포학하고 잔인한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또다시 4월 3일에 1,400여 명이 독립만세운동을 일으켰다. 이와같은 가래비3.1운동은 임진왜란 당시 신각 장군의 왜군섬멸 그리고 한말의병장 윤인순, 정용대 강기동 등의 위대한 항일애족정신을 계승한 결과였다. 양주지역의 3.1운동에는 총 8천명이상이 참가하였으며 이 운동으로 인하여 양주군 화도면 5명, 광적면 3명 주내면 2명의 희생자가 발생하였고 와부면에서는 2명 장흥면에서도 3명의 부상자가 생겼다. 경기도에서의 만세운동은 양주군과 비슷하게 3월 하순에서 4월초 경에 일어났는데 일본 관헌의 투쟁 횟수가 70여 회에 달하였다. 이 과정에서 사망자가 104명 부상자가 190명에 달하였으며 약 3,000여 명이 체포될 정도로 그 희생이 매우 컸다. 가래비3.1독립운동과 나아가 전국적인 3.1독립운동의 민족사적 의의는 하나로 뭉친 민족과 민주국가 탄생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일본제국주의를 축출하기 위하여 남녀노소 신분 차별 직업의 귀천 없이 온 민족이 거족적으로 하나가 되어 3.1독립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이는 국내외에서의 항일독립전쟁 등 여러가지 방법과 책략으로 민족독립운동을 펼치는 계기가 되었다. 이와같은 결과 왕정을 지지하는 복벽주의가 민주공화정체로 전환됨으로써 상해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3.1독립정신으로 근대적인 민주국가가 탄생되었던 것이다.
단기 4339년(서기 2006년) 12월 일 전 대한민국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건국대학교 명예교수 문학박사 박영석 지음. 전 대한민국 현대미술대전 심사위원장 한국 현대서예 연구원장 근당 양택동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