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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호국영웅들이 목숨으로 지킨 38선. 38선은 1945년 8월15일 미.소의 남북 분할 점령에 위해 설치된 군사분계선이다. 한반도 적화통일이라는 북한 김일성 개인의 야욕 때문에 수백만명의 희생과 동족상잔 비극을 초래한 것이 6.25전쟁이다. 3년1개월간의 전쟁에서 38선을 사수하기 위해 호국영웅들이 흘린 피의 수호는 다음과 같다. 국군은 전사 137,899명 부상 450,742명 실종 24,495명 포로 8,343명이 피해를 입혔고, UN군은 전사 40,670명 부상 104,280명, 포로 5,815명이 희생되어야 했으며 이 외에도 999,968명의 민간인 사상과 10여 만명의 고아가 발생하는 등 38선을 지켜내는데 지대한 희생이 따랐다. 이렇듯 현대사의 최대 비극이자 자유 대한민국 수호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38선의 6.25전쟁사상 약사는 다음과 같다. 1950년 6월 25일 전쟁 발발과 동시에 침범된 38선은 1950년 9월 16일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뒤집은 국군에 의해 10월 1일 마침내 수복을 맞아했다. 38선을 돌파한 국군은 북진을 거듭하여 10월 18일 평양을 점령하고 10월 26일 압록강 초산진에 이르렀고 11월 25일에는 청진까지 진격하여 통일을 목전에 두었으나 10월 25일 중공군의 개입으로 12월 4일 평양, 12월 27일 개성까지 후퇴한 뒤 1951년 1월 1일 38선은 다시 침범당하기에 이른다. 1.4후퇴로 서울을 점령당한 국군은 수원까지 후퇴하였으나 전세를 회복한 국군이 3월16일 서울을 재탈환하고 북진하여 4월 1일 경기북부의 38선을 재차 수복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38선의 역사적 내력을 알리기 위하여 조국통일을 염원하는 수 많은 이들의 바람과 홍성규 연천군수의 지원으로 1991년 9월 17일 38선 기념비가 건립되었다. 그럼에도 이 비의 노후화를 안타까워하던 차에 국가보훈처 의정부보훈지청의 후원으로 보수를 하여호국영웅들이 목숨으로 지킨 38선의 역사적 의의와 이 비에 서린 국가수호 및 남북통일의 상징성을 후대에 전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