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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10.19 순천 원도심
지울 수 없는 순천의 역사 '여수·순천 10.19'
1948년 10월 19일 밤. 여수에 주둔하던 국군 제14연대 군인들이 '동족상잔 결사 반대. 미군 즉시 철퇴'를 주장하며 제주 토벌 출동을 거부하고 봉기하였다. 해방 후 자주통일국가 수립과 친일파 척결, 토지개혁 등의 소망을 이루지 못한 민중들의 불만과 분단 정부 수립을 거치며 한국 사회에 누적되어온 모순과 갈등이 폭발하면서 군인들의 봉기는 대중봉기로 확대되어 전남 동부지역으로 순식간에 확산되었다.
정부는 '반군토벌전투사령부'를 설치하고 미군의 지원을 받아 10월 23일에 순천을, 27일 에는 여수를 차례로 진압하였다. 진압 군경과 친일 세력들은 봉기군에 가담하거나 협력했던 사람들을 색출하는 과정에서 지역민들을 빨갱이로 몰아, 수많은 민간인이 피해를 당했다. 여순사건 토벌 이후 정부는 반공국가체제를 강화하여 국가보안법을 제정하고, 연좌제 등을 실시하여 유족들의 삶을 억압하였다.
해방직후 남문통 주변은 순천군청, 법원, 검찰, 경찰서 등 순천의 주요 관공서가 자리하고 있었고, 1948년 여순10.19 당시에는 이곳을 중심으로 주변에서 수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사건의 명칭조차 의견이 다양하지만, 유족과 지역민들의 염원으로 2021년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사건의 명칭조차 의견이 다양하지만,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여 생명의 존엄성이 유린된 역사적 상처를 참된 지혜를 바탕으로 화해와 평화, 민족의 통일로 극복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표지판을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