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page


86page

기당 현상윤선생 상 1894년에 평북 정주에서 태어난 선생은 와세다대학 재학중 소설등으로 신문학운동을 일으켰다. 중앙중학교 교사 시절인 1919년 선생은 김성수. 송진우와 3.1운동을 계획, 48인의 하나로 손병희, 이승훈 및 보전 교우 주익과 강기덕 등 많은 인원을 동원, 만세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그 일로 선생은 20개월 동안 혹독한 옥고를 치렀다. 광복직후 선생은 보전 교장을 거쳐 고려대 초대총장으로 재직하면서 『조선유학사』 조선사상사』를 저술 직접 강의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 때 납북되어 생사를 알 수 없던 중, 고려대는 1953년 선생의 『조선유학사』를 학위 논문으로 인정 고려대박사학위 제1호이자 대한민국 박사학위 제1호를 수여 그 분야 학문에서 선도한 선생의 공을 기렸다.
86page

하지만 3.1운동에 참여하였지만, 그후 다음과 같은 친일관련으로 논란이 있다. 중일전쟁주 이후 조선총독부 주최 시국인식 강화를 위한 제2차 시국순회강연회 연사,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의 비상시국민생활개선위원회 제2부 위원에 선임되었다. 1939년 4월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참사, 조선유도연합회 평의원, 1941년 녹기연맹과 국민총력조선연맹 참사, 1941년 임전보국단 발기인으로 활동했다. 친일단체 활동과 강연뿐만 아니라 언론매체에 많은 친일 글을 기고해 전쟁협력을 강조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