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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르는 바람에 비석의 좌, 우면은 촬영을 하지않았다. 4년 지난후에 함안 추가탐방시에 재촬영하여 추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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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8월 29일 우리나라는 외적의 침략을 받아 국권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민족의 자유는 여지없이 짓밟혀 삼천리강산은 마치 감옥처럼 변하고 이천만 동포는 누구나 다 포로가된 고초를 겪었다. 마침 제 1차 세계대전이 1918년에 끝나고 미국 윌슨 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를 제창하게 되자 국내외에서 활약하고 있던 수많은 지사 선열은 천재일우의 호기라 생각하고 독립운동을 가일층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1919년 3월 1일 기미만세운동이 서울을 중심으로 폭발하였으니 이것은 한일합병에 항거하는 통분한 함성이요 자유독립을 되찾으려는 비장한 절규였다. 삽시간에 삼천리 방방곡곡에 번져 천지진동하는 맹렬한 기세는 적으로 하여금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이 고장에서도 그 무서운 일제의 폭압을 박차고 만세운동이 일어났으므로 거룩한 선열들을 추모하여 3.1정신을 수호하기 위하여 이 기념비를 시운다. 이곳은 낙동강변 모산하에 위치하여 1897년에 이령교회가 창설되고 1904년에 경명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