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page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➊ • 김대락의 백하일기 ㉗ 85 게 일어났다고 한다. 대저 지금 이후 로는 군신(君臣)의 분수는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니, 계룡산 운운하는 말은 허무맹랑하여 어리석은 자들이나 믿 는 지식으로 귀결되었다. 속아도 깨닫 지 못하고 익숙한 것만 좇는 견해가 매우 가소롭고 한심스럽다. 최생의 병증은 수토증(水土症)인 것 같은데 침과 약이 소용이 없으니, 막 힘을 써야 할 때에 지극히 낭패스럽다. 28일 이만영, 이강호가 와서 내기 바둑을 몇 판 두었다. 이는 도만(渡滿) 이후 처음 있는 일로 오랫동 안 하지 않던 나머지라 한 수를 두는데도 방향이 헛 갈린다. 잡기(雜技)도 오히려 이러하거늘 하물며 실 지상(實地上)의 공부에 있어서이겠는가? 밤에 갑자기 감한(感寒)의 증세가 나타나 거의 인 사불성이 되어 밤새도록 괴롭게 앓았다. 쇠약한 기 력을 스스로 시험해보건대, 빠지고 줄어듦을 차츰 알겠다. 29일 또 머리 아프고 허리 아픈 것이 수도 없이 번갈아 쑤셔댄다. 심신을 스스로 헤아려보건대 오래 살지 못할 조짐이다. 가련히 여기고 탄식한들 어찌 하겠는가? 충남 청양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에서 경제학 · 정치학을 공부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율곡 연구로 석사 ·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한국정치연구 소 선임연구원을 지냈고, 현재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이사를 맡고 있다. 시대가 당면한 여러 문제를 풀어낼 지혜를 지나간 역사에서 찾아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면 암 최익현 선생의 5대손이다. 필자 최진홍 1910년대 독립운동 근거지였던 서간도 유하현 삼원포 양종장촌 전경(독립기념 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