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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스크랩 • 구국 의병항쟁 열전 - 거룩한 구국항쟁의 현장을 가다 ⑪ 85 군장 양치홍(梁治洪) 좌익장 오성범(吳聖範) 우익장 양지술(梁志述) 운 량장 김목사리  이 무렵 나주 출신의 의병장 김태원이 합진(合陣; 부대를 합침)을 제의해 왔다. “창의의 목적이 똑같은 데 제 각지에서 흩어져 싸우면 적 에게 허점만 드러낼 뿐일세”라는 명분에 오성술은 참모회의를 거쳐 김태원 의병부대와 합진하여 막좌 (幕佐 우두머리 참모)가 되었다. 오 성술은 김태원 의병부대 막좌로 서, 고창 문수사 전투와 김태원 의 병장이 앞장 선 호남창의회맹소 (湖南倡義會盟所)의 영광 법성포 탈환 작전, 창평 무동촌 전투에도 참전하여 큰 전과를 올렸다. 호남창의회맹소는 법성포 전투 직후에는 일제 군경의 추격을 피 하고자 부대를 분산하여 활동케 되었다. 오성술은 이때부터 독립 의병부대를 이끌면서 호남평야를 무대로 항일투쟁에 전력을 기울였 다. 1908년 1월, 오성술 의병장은 20여 명의 부하를 이끌고 광주군 마지면의 일본인 농장과 광주군 대지면 전촌에 있는 일본인 농장 을 습격하여 농업 수탈에 앞장선 일본인 지주들을 응징했다. 이합집산 전술로 적을 교란하다 호남창의회맹소를 중심으로 한 호남의병 활동이 날로 격화되자, 1908년 초부터 일제는 대대적인 의 병 탄압을 감행하였다. 이에 따라 호남창의회맹소 를 이끌던 기삼연 의병장이 그해 2월 순창에서 일제 군경에 붙잡혀 광주 서천교 백사장에서 총살당했다. 호남의병들의 근거지였던 용문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