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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스크랩 • 구국 의병항쟁 열전 - 거룩한 구국항쟁의 현장을 가다 ⑥ 85 이 부족했던 일제는 우리나라 호남평야에 유독 눈독을 더 들 여 이 지역 토지 침탈에 더욱 광 분하였다고 한다. 호남의 백성 들이 그들에게 땅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거세게 항쟁한 까닭 에 다른 지방보다 항일전선은 더 크고 끈질겼다고 한다. 심남일 후손 집을 쉬이 찾으 리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 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요즘 겨 울 시골길에는 도무지 사람을 볼 수가 없는 점이다. 다행히 월 야초등학교 가까운 한 마을에 서 만난 분이 고맙게도 자기 차 로 앞장서서 10여 분 꼬불꼬불 한 들길을 달린 끝에 계림리 마 을 어귀까지 데려다 줘서 크게 고생하지 않고 찾았다. 전화 연 락을 받은 심만섭(65) 씨가 집 앞에서 우리 일행을 맞이했는 데, 청각장애인이라 조금 아쉬 웠다. 고영준 선생이 차의 시동 을 끄면서 혼잣말처럼 뱉었다. “나나 댁이나, 의병이나 독립지사 후손들은 왜 이 렇게도 어렵고 못 살까?” 그분을 따라 집안에 들어서자 심 의병장 며느님 백옥련(90) 씨가 마당에서 약재(오가피나무와 복분 자)를 말리다가 반겨 맞았다. 당신은 4남매를 뒀는데 모두 객지로 나가고 막내아들과 단 둘이서 산다고 하였다. 심만섭 씨는 미리 준비해 둔 할아버지 의병 자료 들을 모두 꺼내 마루에 펼쳤다. 나는 대청 벽에 걸린 심남일 의병장 초상화부터 촬영하고는 의병투쟁일 지인 『진지록(盡至錄)』을 펼쳤다. “우리 아들이 농사를 지어 산 집 땅에다가 며칠 전 심남일 의병장 머느리 백옥련 씨와 손자 심만섭 씨   심남일 의병장 진중일지 『진지록』(이상 필 자 촬영) 『남한폭도대토벌 기념사진첩』에 실린 심 남일 의병장의 모습(독립기념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