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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터 우정국에 봉직하셨으나 차츰 나라가 어지러워져서 1910년에 조국이 일제에 병탄되는 경술국치를 당하자 공은 종교를 통한 구국의 뜻을 세워 기독교로 개종하여 1917년 기숙교감리회신학전문학교를 졸업하면서 독실한 신앙생활과 아울러 본격적인 독립운동과 교육사업에 진력하셨고 3.1독립선언에는 처음부터 33인의 한 분으로 적극활동하여 2년 6개월에 이르는 모진 옥고를 치르셨고 그 뒤에도 광주학생사건 비밀결사 흥업구락부사건 등으로 여러차례 영어의 몸이 되어 고초를 겪으셨다. 그러면서도 공은 서울종교교회목사로 또 원산감리교회목사와 아울러 원산광성학교장을 지내셨고 또한 민족활동조직이었던 신간회의 총무간사 외화배척 및 국산애용과 산업진흥을 위한 운동체인 물산장려회의 본부이사 및 이사장 등으로 오로지 나라와 겨레의 자주와 독립을 위해 종횡무진으로 헌신하신 활약상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8.15 광복과 하께 공은 조선민족각각수 한중협회장 비상국민회대의원 과도정부 입법의원 정치대학(현 건국대학교)장 등 여러 중책을 두루 맡아오시다가 1950년 5월에는 대한민국제2대국회의원에 당선(서울 종로 을구) 되어 건국초기의 국정에 참여하셨으나 6.25 동란으로 불행히도 피납되시어 평양에서 저들의 협력강요에 못이겨 끝내는 대동강에 투신순절하셨다하니 통탄을 금할 길이 없으며 공은 민족지도자로 숭배받는 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