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page
84page
숫자로 보는 10.16. 부마민주항쟁
0 새벽 0시 비상예엄선포. 1979년 10월 18일, 정부는 새벽 0시를 기해 부산 일원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2 부산과 마산. 부마민주항쟁은 부산과 마산, 두 도시에서 일어난 대규모 시민항쟁이다.
7 부산대학교 정광민의 폐정개혁안. 1. 유신헌법 철폐 2. 안정 성장 정책과 공평한 소득 분대 3. 학원사찰 중지 4. 학도호국단 폐지 5. 언론,집회, 결사의 완전한 자유와 보장 6. YH사건에서와 같은 반윤리적 기업주 엄단 7. 전 국민에 대한 정치적 보복 중지
9 긴급조치 9호. '긴급조치8호;는 유신헌법을 부정.반대.비방하는 모든 행위등을 금지하는 것으로, '긴급조치 9호' 아래에서 시위대오ㅢ 주요 구호였던 "유신철폐"와 "독대타도"를 외치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었다.
10 10.26 사태. 부마민주항쟁이 일어난 지 10일이 지난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중앙정보부 김재규에 의해 파살당한다.
18 군사독재 18번째 해. 부민주항쟁이 일어난 1979년은 군사독재가 시작된 지 18년을 맞는 해였다.
306 인문사회관 306호 강의실. 10월 26일 선언문이 배포된 곳은 인문사회관 306호 강의실이었다. 화폐금융론 수업을 기다리던 학우들은 자연스럽게 시위 대오를 형성하여 상대 쪽으로 이동하였다.
500 부사대학교 학생 집결. 1979년 10월 16일, 부산대학교 구내도서관 앞에서 약 500명의 학생이 모여 독재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인 것이 본격적인 시위의 시작이었다.
5000 첫날 시위에 참여한 부산대 학생들. 첫 날 시위에 참여한 부산대 학생들은 총 재적생 약 7,000명 중 5,000명이었다.
50000 시위에 참가한 부산 시민들. 1979년 10월 17일 부산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의 수는 50,000여명을 헤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