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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2024년 5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여성독립운동가 열전 선전공작에 진력하는 등 광복을 맞이할 때까지 적극 적인 독립운동을 펼쳤다. 아버지 엄항섭 지사에 대해 백범 김구는 그의 저 서《백범일지》에서 “엄항섭 군은 자기 집을 돌보지 않고 석오 이동녕 선생이나 나처럼 먹고 자는 것이 어려운 운동가를 구제하기 위해 불란서(프랑스) 공 무국에 취직을 하였다. 그가 불란서 공무국에 취직 한 것은 두 가지 목적에서였다. 하나는 월급을 받아 우리에게 음식을 제공해 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왜(일본)영사관에서 우리를 체포하려는 사건을 탐지 하여 피하게 하고 우리 동포 중 범죄자가 있을 때 편 리를 도모해 주는 것이었다.” 엄항섭 6 · 25전쟁 때 납북으로 어려움 겪기도 이처럼 백범이 있는 곳이면 어디라도 그림자처럼 동행하면서 임시정부에서 활약한 엄기선 지사의 아 버지 엄항섭 지사는 안타깝게도 김구 주석을 도와 분단된 광복에 반대, 반탁운동을 펼치다 6·25전쟁 때 북한에 피랍됐다. 이 일로 엄기선 지사 일가는 월 북 인사로 규정되는 바람에 한때 ‘빨갱이’ 집안으로 몰려 갖은 고초를 겪어야 했다. 엄기선 지사는 광복 후, 고국에 돌아와 서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경기도 여주에서 교사로 활동하 다가 전쟁 미망인들과 결손가정의 열악한 생활을 목 격하고, 1964년 대전에서 결손가정을 돕는 ‘루시모 자원’을 세워 한평생 사회복지 활동을 펼쳤다. “(중국에서) 삼일절만 되면 우리는 큰 회관을 빌려  기념식을 꼭 했어요. 식을 할 때 삼일절 노래도 부르 고 애국가도 부르고, 어렸을 때 생각하니까, 어른들 은 눈물을 펑펑 흘리며 삼일절 노래를 부르던 생각 이 나요. (노래) 참 기쁘고나 삼월 하루, 독립의 빛이  비쳤구나. 금수강산이 새로웠고, 이천만 국민이 기 뻐한다. 만세 만세 만만세, 우리 민국 우리 동포 만만 세. 대한민국 독립 만만세라.” 이는 중국 내에서 임시정부가 피난으로 지새우던 시절 남방의 호남성(湖南省) 장사(長沙)에서 맞은 3·1 독립만세운동에 대한 엄기선 지사의 회상이다. 그의 애국가 사랑은 광복 이후 고국으로 돌아와서도 이어 졌다. 1995년 광복 50주년 되는 해 그는 3 · 1여성동 지회 대전지회장을 맡았다. 이때 “우리 국민들이 애 국가 구절 중 가장 중요한 4절을 잘 모르는 것 같아 여름철에 필요한 부채에 애국가를 담아 보급하고 있 다”며 애국가 4절이 적힌 부채 1천 개를 제작하여 대 전역 광장과 동양백화점 등에서 시민들에게 무료로 보급하기도 했다. 엄기선 지사의 올케인 최화자(75세, 남동생 엄기 남 선생의 부인)회장 (3 · 1동지회 대전지회장)을 만 엄기선 지사 어머니 연미당· 아버지 엄항섭(뒷줄 왼쪽 첫째, 둘째),  앞줄 왼쪽부터 (엄기순, 엄기선, 엄기동(1936년 중국 가흥[嘉興])